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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Jun 03. 2020

울 엄마 집 나갔어요

나도 알아 그 기분...

2월 중순부터 코로나 19로 인해 중단되었던 수업을 다시 나갔다. 지역의 아동돌봄센터에는 맞벌이 부모나 편모 편부의 생계로 인해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이 머무르고 있다. 선배의 소개로 이 아이들과 매주 시간을 보낸지도 벌써 일 년 어느새 아이들과 정도 들었고 몇 달 안 보니 보고 싶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1~3학년인데 오늘 가보니 새로 들어온 1학년 여자 친구 두 명이 있었고 그 아이들까지 더해 모두 8명이 되었다. 엄마가 외국인인 아이들이 많아 처음 수업할 때부터 수업 내용이나 나의 사소한 언행을 극히 조심하며 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운이 쭉 빠지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고 아이들이 잘 따라줘서 무척 행복했다.


몇 달 쉬다 시작하는 수업이라 잘해볼 맘에 이것저것 준비하고 수업 끝나면 주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도 잔뜩 챙겨 갔다. 새로 만난 1학년 여자 친구 두 명은 아주 밝고 스스럼없이 다가왔으며 수업태도도 좋아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는데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훅’ 치고 들어온 말.


“울 엄마 집 나갔어요. 그래서 이제 못 봐요.”


아! 그동안 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수업을 했으나 이렇게 담담히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아이는 처음이었다니 그 사실이 더 충격이었고 움찔하는 나 자신이 더 충격 있었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니 니가 무슨 자격으로 이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참... 그런 맘이 그 아이의 한 마디 후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다행인 것은


“나도 알아 그 기분”


겪어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다.

감히 위로도 할 수 있다.


나는 비록 중2였지만 니 맘을 알 수 있어. 누구네 집 밥숟가락 숫자까지 알던 작은 동네에서 허물없이 지내던 그 집 아저씨랑 울 엄마가 떠났던 건 나에게도 충격이었지만 온 동네가 충격이었고 두고두고 밥상에 올랐던 반찬거리였지. 학교로 날 찾아와 울먹이며 소리치던 그 집 언니, 어딜 가나 동정 어린 눈동자들, 새벽기도 하시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부짖던 친할머니, 그 소리에 깨서 눈치 보던 두 동생들. 나는 그만 도망치고 싶었고 그날 할머니 심부름이라고 둘러대며 작은 제초제 한 병을 샀어. 살 운명이었는지 할머니가 그걸 발견하시고는 아버지에게 보여 주셨어. 아 난 그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좀 더 잘 숨겨둘걸 그랬지. 그 일로 엄마가 돌아왔어. 감추었지만 나는 봤어. 손목에 그은 상처를...


한번 깨진 그릇은 아무리 잘 붙여 놓아도 틈이 생겨. 아버지는 나 때문에 엄마를 다시 받아주었고 엄마도 나 때문에 그 많은 비난을 감수하고 다시 돌아왔지. 그렇게 서로 섞이지 않은 채 우리는 지금껏 살아왔어. 나도 아이 셋 낳고 살아보니 이제야 울 엄마가 안쓰럽고 그때 내가 붙잡은 것 같아 미안하고 비난했던 날들이 후회스러워. 이제는 서로의 잘잘못 내색하지 않고 만나면 즐겁고 화목한 가족으로 보이니 더 바랄 것이 없어.


이 많은 말들을 그 아이와 하고 싶었으나 이제 겨우 새싹 같은 1학년. 그저 손잡아 주었다.

수업시간 내내 내 곁에 앉아 내 팔을 조물 거리던 그 고사리손을. 그리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돼”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싱긋 웃는 그 아이의 눈이 슬프게 반짝이는걸,

그걸 알아차리는 내가 조금은 대견스러웠다.



#아이 #학생 #센터 #돌봄 #1학년 #일기 #대화 #엄마 #가출 #외도 #상처 #공감 #나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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