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Lolita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문학동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 끝. 롤. 리. 타. (민음사)
개인적으로 문학동네의 번역이 더 좋다. 마법처럼 자꾸만 Lolita를 불러보게 된다.
나보코프가 말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좋은 독자, 일류 독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재독자再讀者다” (문학강의). 이 말은 어떤 책이든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읽을 때’ 비로소 ‘한 장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책 전체를 바라보며 문장 하나하나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롤리타>를 읽는 독자들에게 이 독서법을 권한다.
앨프리드 아펠은 이렇게 단언했다. “전 세계의 속독가 들이여, 유념하라! <롤리타>는 여러분을 위한 책이 아니다.” P545
저자의 이 말에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래 역시 한 번에 읽을 수 없는 책이었어. 소아성애가 천형과도 같다던 험버트 험버트(H.H)를, 조금도 H.H에게 줄 마음이 없었던 롤리타를, 그런 그들을 말해주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나는 너무나 복잡한 심정으로 그들을 읽어나가고 읽어 내었다. 만약 영어로 된 원서를 읽었더라면 내가 영어를 정말 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을 만큼 작가는 언어유희의 대가였고 방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러시아 출생이면서 영어로 이런 책을 쓴 것이 어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는 줄거리. 그러나 1955년 출간된 후 50년 동안 5천 만 권 이상 팔린 이 책을 문장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이는 몇이나 될까? 작가의 권유처럼 2~3번 읽은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소아성애자의 심리, 그 범죄를 슬쩍 훔쳐보려 책을 펼쳤다가 아! 잘못 짚었구나 하며 덮은 사람이 분명 많았으리라.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중요한? 장면에서는 너무나 간단명료하게 감정을 차단해 버리기에 실망하며 책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나는 좋았다. 나의 H.H(물론 1997년 영화 롤리타속 제레미 아이언스)를 저질, 변태로 만들어 주지 않아서.
작가는 어느새 H.H가 되어 잠시 그 고통스러운 심연으로 빠져든다. 그러다 문득 그를 바라보고 다시 작가가 되어 그를 이해하고 변호하고 자책하고를 반복하는 것 같다. 선천적 장애와도 같은 H.H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는 당연히 정신병자이며 범죄자 추악한 인간이 하는 짓이고 물론 그도 그런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지 않도록 억누르고 또 억누른다. 하지만 롤리타 그녀를 본 순간 그 어떤 고난이나 심지어 죽음과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그녀와 함께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친엄마가 프러포즈해 롤리타의 양아버지가 되고 평생 그녀의 보호자를 꿈꾼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롤리타의 친엄마가 H.H의 일기장을 읽고 충격을 받아 정신없이 집에서 나가던 중 교통사고로 죽어 이제는 롤리타의 하나뿐인 보호자가 되고 그때부터 그는 롤리타를 데리고 미국 전역을 떠돌며 그녀를 자신의 어린 신부로 만든다. 그녀를 안으면, 지켜보면 형용할 수 없는 행복과 만족에 도취되지만 항상 그 이면에는 그녀로부터 버림받게 될 자신과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없음에 괴로워한다.
그의 사랑은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랑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비난받아야 하며 범죄행위이다. 언제부터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데 나이와 성별 등 제한적인 규범을 만든 것일까? 그런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정말 이 사회는 타락하고 멸망해 버릴 것인가. 합의를 잘 지켜나가는 다수를 위해 소수는 음지로 숨어들고 모든 더러운 행위의 대표적인 예로 여겨져야 하는가. 롤리타는 H.H를 사랑하지 않는다. 만약 H.H가 그녀에게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면 그래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의 행위는 범죄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버지와 딸로 살아가다 둘이 함께하는 것은 괜찮을까. H.H 자신은 2차 성징이 지난 여자에게는 오히려 혐오를 느끼고 롤리타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하지만 과연 그녀와 계속 함께 했다면 그랬을까? 13살 때 이루지 못한 애너벨과의 사랑 때문에 H.H의 감정의 대상은 그 나이 또래에 머물러 있었지만 롤리타에게서 그는 치유되고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너무 아쉽다.
작가는 자신의 글에는 어떠한 교훈도 없다 하고 그저 글을 쓰는 목적이 심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일뿐이라고 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언어의 아름다움, 그의 지식을 수혈 받는 느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다시 첫 페이지를 넘기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작가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그리고 험버트 험버트와 롤리타의 첫 만남부터 다시 써본다. 나만의 <Lolita>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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