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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 Nov 17. 2019

오드 아이 섬

배달의 마녀 기행기 - (6) 나르시시즘 나비

나비는 오자마자 새빨간 플리츠 드레스를

훌렁 벗어 히비스커스의 꽃술 1에게 건네준다.  
꽃술 1은 익숙하게 드레스를 받아 행거에 툭 걸어 둔다.  


"반납 "


앙상한 번데기가 바람에 휘청 휘청 걸어온다.

투명한 날개 덕에 마치 날개 조차 없어 보이는

나비의 몸이 어딘지 초라하고 어색하다.
원래 나비의 날개에는 색소가 없다.

꽃잎에도 과일에도 수만 가지 색이 있건만.

나비들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옷을 빌려

자신의 색을, 욕망을 표현한다.

오닉스처럼 까만 눈에 빛이 없다.
모기보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가

히비스커스 샵 레드 카펫 위에 어정쩡하게 올라섰다.


"추워. 나 꿀차"

꽃술 2가 끄덕이며 따뜻한 꿀차를 준비하자 그녀는 입술 아래 긴 빨대를 탁 내리꽂아노란 꿀을 쪼옥 쪼옥 빨아올리며 신상이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그녀는 아침에는 화이트, 오후에는 핑크, 저녁에는

레드빛 드레스가 화려하게 디피 되는
여기 히비스커스 패션 뷰티숍의 VVIP 단골손님이다.

다섯 명의 전문가가 각각 헤어. 의상. 메이크업. 소품. 퍼퓸으로 구성된 완벽한 팀워크의 히비스커스 뷰티숍.


그녀가 꿀차를 먹다 벌떡 일어나 새하얀 드레스 한 벌을

집어 든다.

" 이거 못 보던 거네? 신상이야?"
꽃술 1이 깔깔대며 역시 보는 눈이 다르다고 치켜세운다.

소매와 스커트가 풍성한 벌룬 드레스에 폴짝 올라타

빙그르르 턴을 하다 휘청이는 그녀를 부축하며

꽃술 3이 레오파드 패턴의 스카프와 파란색 레이스. 주홍색 브로치.유색 보석 액세서리들을 주렁주렁 끼워준다.


꽃술 4가 대왕 롤빗을 들고 와 그녀의 흑단 같은 더듬이를 수차례 드라이한다.스프레이까지 뿌리니 양 더듬이의 웨이브가 더욱 탱글탱글하다.


꽃술 2가 브러시를 여러 개 쥐고 그녀의 뺨에는 요즘 핫한 산호빛 볼터치를 그녀의 대롱에 어제 출시된 유자색 립스틱을 꼼꼼히 바른다.

거울 속 나비는 입술을 쭉 당겨보고 눈을 키웠다 가늘게 만들었다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보다 뱃살을 잡한숨을

푹 내쉰다.

"요새 피곤한지 많이 상했어. 더 가꾸어야겠어.

반짝이 좀 많이 넣어줘. 진주도 하나 더 주고.

참 그 애는 오늘 무슨 옷 빌려갔어? "

나비는 요새 자기보다 더 젊고 예쁜 나비가 신경 쓰인다.


"그 애는 아직 애벌레 티도 못 벗었어. 꽃들은 나같이 자기 관리를 잘하는 숙한 나비를 좋아한다고"


나비가 발톱에 바를 매니큐어 하나를 집어 들고

입술을 샐쭉거리며 벌써부터 내일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한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꽃술 1,2,3,4,5가 그녀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꾸며주는모양새가 마치 하나의 군무처럼 보인다. 꽃술에게 매니큐어를 건네며 발톱을 치켜 올린 나비가 갑자기 애창곡을 흥얼거린다.

  

" 제비야~ 사파이어를 내 눈에 박아 줘.  

우주의 꽃잎을 따다 내 몸을 장식해줘.

바다의 산호를 건져 머리를 장식해줘.

나비의 비늘로 기와집을 지을래~~ 우우

새하얀 깃털로 이글루를 만들래~~ 우우
무지개 드레스 열기구를 입을래~ 우어 우어~ ♪"

꽃술 5가 드레스에 은빛 펄 가루가 든 퍼퓸 한 통을 다 뿌리고서야 나비가 만족한 얼굴로 일어나 엄청난 속도로 셀카를 찍어댄다.

그녀의 치장은 한 편의 나르시시즘 서커스다.

공허한 그녀는 매일 이곳에 들러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하루를 버티다 다음 날 또 미의 잔을 든다.

아프로디테를 경배하며.


다음날

나비가 홀딱 젖은 몸으로 울면서 뛰쳐 들어온다.

꽃술 다섯이 하던 일을 멈추고 경악을 한다.

꽃술 2가 커다란 타월을 나비의 몸에 덮어주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며 안아준다.


나비의 더듬이 두 개가 반대로 꺾여있고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투명한 원래의 날개는 다행히도 다치지 않았다

나비의 숨구멍들이 부들부들 떨린다.

   

"내가... 예쁘다고. 내가.. 너무 예뻐서.. 박제를 한다고. 나.. 를 잡으려고.. 딸꾹."


나비가 얼마나 놀랬는지 대롱도 다 풀어둔 채

말을 하다 딸꾹질을 한다.
주적주적 내리던 비가 바람비로 바뀐다.

나비가 들어오다  떨어뜨린 액세서리들이 또르르 그녀 곁으로 굴러간다. 

레드 카펫에 젊은 나비가 젖은 날개옷을 접으며

들어오는 게 보인다.

나비는 굴러온 진주 목걸이를 손으로 탁 쥐며 

큰 소리로 외친다.


"나보고 정말 예쁘댔어.

박제서 액자에 걸고 싶을 정도로 나보고 예쁘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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