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댄서 Jan 11. 2021

하루키, 일인칭단수, 추억 속에 생생한 내 꿈 이야기

[1일 1꿈] 하루키, <일인칭단수> 중 '위드 더 비틀스'를 읽고

1.


나도 이런 기억을 갖고 있을까요? 내 귓가에 딩~동~댕~ 종소리 울던 기억 말이예요. 이번 소설집 중 <위드 더 비틀스> 편의 주인공은 그런 멋진 기억을 하나 갖고 있어요.


한 여자애를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 그때는 1964년, 비틀스 열풍이 세계를 강타한 시대였다. 그녀는 학교 복도를 치맛자락을 펄럭이면서 잰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녀는 레코드 한 장을 매우 소중한 듯이 가슴에 안고 있었다. <위드 더 비틀스>라는 음반이었다.

내 귓속에서 작게 종이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무언가를 서둘러 알려주려는 것처럼.
- <위드 더 비틀스> 중


이렇게 멋진 장면으로 이 소설은 시작하지만, 이 소녀는 더이상 나오지 않아요. 그 대신 그 시절 여자 친구와 그녀의 오빠가 나옵니다. 그 여자 친구는 비틀스 음악을 듣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녀의 오빠는 기억 저장에 에러가 생겨서 특정한 시간의 일을 기억 못하는 병을 갖고 있었고요. 이 소설은 이 3명이 만나고 얘기하고 헤어졌다가 20년 후 우연히 만나는 얘기예요.



2.


나는 이 소설이 이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에서 가장 맘에 들었어요. 그런데, 왜 좋았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명확하게 대답하기는 어려워요. 그냥 느낌이 좋아요. 앞에서 얘기한 '비틀스 LP 판을 가슴에 안고 학교 복도를 뛰어가는 소녀' 이미지처럼 그냥 좋아요.


이 소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민한다가, 난 결심했어요. 이 소설은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이가 한 살 한 살 늘어갈수록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이 무척 낯설어져요. 그렇게 나이들어 가지만 초롱초롱 꿈을 꾸던 소년, 소녀 시절 사진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예요.


그런데, 꿈과 내 추억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특히, 만났다 헤어진 사람, 그리고 우연히 잠깐 만난 사람이 내 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우선, 꿈이라고 말할 정도가 될려면, 앞에서 말한 '비틀스 앨범을 갖고 뛰어가던 그 소녀' 이야기처럼 내 귓속에 종소리가 들려야 해요.

딩동댕~~ 딩동댕~~


그리고, 그 꿈이 나에게 다가온 순간이 한장의 사진처럼 '이미지'로 남아 있으면 좋아요. 글이 아닌 이미지로 말이예요.




그리고, 어떤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내 꿈의 키가 쑥쑥 커야해요. 주인공은 여자 친구의 오빠와의 만남이 그랬어요. 그 오빠는 이상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과 같이 있었던 시간은 매우 불편했어요. 그 사람은 기억 저장에 에러를 가져서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사람이었고, 둘은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죽음'에 대한 글을 소리 내어 읽었어요. 그리고, 다시 만날 일 없이 20년이 지났고, 우연히 길거리에 만나서 그 여자친구가 자살을 했고, 그 오빠는 주인공과 함께 책을 읽은 후에 그 기억 저장 에러가 사라졌다고 들어요. 지금 주인공에게는 이 모든 일이 과거의 추억일 뿐 어떤 의미도 없는 일이예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거죠.


어찌 보면 정말 밍밍한 싱거운 이야기예요. 꿈 이야기인지, 고등학교 시절 추억이야기인지 도대체 뭔 얘기인지 모르는...




3. 내 꿈에 영향을 주는 추억이란...


과거의 일은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추억, 그때는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잊고 있는 추억, 그리고 아무런 의미없이 단순히 기억으로 존재하는 추억...


첫번째 큰 영향을 미친 추억은 아마도 '비틀스 앨범을 들고 뛰어가던 그 소녀' 이미지 같은 경우일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추억 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진다는 점이 중요해요. 그렇게 서서시 흐려지다가 갑자기 또렷해지는 일이 발생하죠.


소설 속 주인공도 아마 '비틀스 그 소녀' 이미지를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년 만에 우연히 만난 예그 시절 여자친구 오빠 때문에 '비틀스 그 소녀' 이미지를 생생하게 기억해 낸 것 같아요. 소설에 그런 표현이 나오지는 않지만 말이예요.


우리 꿈과 추억들이 각각 배터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봐요. 처음에는 충전 100%이겠지만, 서서히 떨어지면서 희미해지겠지요. 그 때 그 추억과 관련된 사람을 만나요. 그 사람이 그 희미해져가던 추억의 배터리를 4배속 급속 충전을 시켜주요. 솔직히 그 사람은 내 인생과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말이예요.


그렇게 내 꿈과 추억은 다시 초롱초롱 밝아지고, 내 귓속에 딩동댕~~ 종소리를 울려요.



4.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눠요. 내 꿈과 관련된 사람과 내 현실과 관련된 사람으로 말이예요. 그런데, 내 꿈과 관련된 사람이라고 해서 대단히 친하고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예요. 오히려 우연히 만났거나 짧은 시간 같이했던 사림인 경우도 많아요. 소설 속 주인공과 여자친구 오빠 관계처럼 말이예요.


나는 내 꿈의 배터리를 채우는 방법으로 나 혼자 그 꿈을 키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잘 안되요. 서서히 그 빛이 줄어들어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만난 사람을 통해서 내 꿈 배터리를 충전하는 일이 생겨요. 놀라운 일이죠.


내가 소년 시절 품었던 꿈 같은 것이 이제 효력을 잃었음을 새삼 인정해야 해서일 것이다.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위드 더 비틀스> 중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위한 인생 배터리 충전 방법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