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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댄서 Jul 18. 2023

직딩의 '경제적 공모'와 '정서적 공모' 사이

[점심을 먹므여 뻔뻔함을 충전합니다.] 장류진, <공모>를 읽고..

1.


내 인간관계와 대화 소재에서 '회사'를 빼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10%라도 남긴 할까? 허무하다. 인생이 이게 뭐냐 싶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어제 점심 얘기를 해보려 한다.


점심 약속이 취소되어 혼점을 하게 되었다. 늦은 여름 장마로 7월 중순인데도 비는 우당탕탕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서촌에 있는 '나흐바'에 갔다. 사장님이 직접 만든 시나몬롤과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생각을 시작했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내 인간관계 전체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장류진 작가의 <공모>라는 소설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3명이다. 현부장, 김상무, 그리고 천사장... 김상무는 전형적인 쌍팔년도 직딩 아재 스타일이다. 현부장은 17년전 신입으로 입사하여 김상무가 부장이던 시절부터 같이 근무했고, 김상무는 그녀를 다른 남성 동기를 제치고 부장으로 먼저 승진시켜 주었다. 천사장은 회사 근처 호프집 사장이다. 김상무가 일주일에도 3~4번은 갈 것 같은 당골집 사장님인데, 친화력과 기억력도 좋지만, 외모와 몸매도 좋은 듯 하다.


그런데, 경제적 공모 관계라고 무시했던 김상무와 천사장도 사실은 다정한 공감과 위로를 주고 받은 '정서적 공모' 관계였다. 거기다 김상무는 현부장을 승진시켜 주지 않았는가? 현부장은 김상무를 존경하지는 않았지만, 승진 관련해서는 '정서적 공모' 관계가 조금 있는 편이었다. 과연, 이들 3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서적 공모' 관계란 단어를 떠올렸다. 소설에는 '정서적 공모' 관계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공모'라는 상황이 나올 뿐이다. 나는 그런데 그 '공모'라는 두 글자에 꽂혔다.


공모...


뭔가 서로 주고 받은 공동 이익 집단 같은 관계 말이다. 진짜 인관계가 아니라.. 이익 기반의 관계..


우리가 그런거였어. 공모 관계...




2.


나 같은 평범한 직딩에게 회사에서의 공모는 '정서적 공모' 관계 밖에 없다. '공모'는 뭔가를 서로 주고 받는 관계를 말한다. 회사에서 직딩끼리 주고 받을 것은 '공감' 밖에 없다. 경제적인 것은 1도 없다.


회사에서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 있다. 그들과 나는 '정서적 공모' 관계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공모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생각해 봤다. 90%가 회사 얘기다.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그들과의 관계가 '정서적 공모' 관계가 맞을까? 회사란 존재가 없으면 그들과 나 사이의 어설픈 끈이자 공모 관계는 끊어지고 말 것 같기 때문이다.


공모라는 말에는 은근히 부정적이고 제한적이고 이해 관계가 얽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즉, 나는 '사람으로서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서적 공모 관계'일 뿐이라는 거다. 공모할 이해 관계가 사라지는 순간, 연결 고리가 단한 칼에 끊어지는 관계 말이다.

 

사람 관계가 다 이런거 아닌가라고 위안을 하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3.


'사람의 쓸모'는 어떻게 결정될까?


그 사람의 매력도
X
효용성


효용성의 예를 이렇다.

ㅇ 빵을 서로 좋아해서 같이 빵 먹으러 가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

ㅇ 신상 핫플레이스를 같이 가자고 하면, 같이 가서 사진 멋지게 찍어주는 사람

ㅇ 아무 때나 부담없이 점심 먹자고 말하고, 거절 당해도 마상이 없는 사람

ㅇ 답답하고 짜증날 때 소주 한잔 같이 먹으면서 푸념을 할 수 있는 사람

ㅇ 커피를 좋아해서 모닝 커피 한잔 부담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친한 사이'라고 믿었던 친구들과 나는 '정서적 공모' 관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톡을 먼저 하지 않는다. 그렇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지도 않고, 저녁을 하자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쓸모가 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면, 내가 쓸모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매력도가 낮기 때문이다. 몇가지 포인트에서 효용은 있는데, 매력도가 낮다 보니 매력도 X 효용성하면 매우 낮은 쓸모가 나오고 만다. 0 곱하기 100은 0이 되는 곱하기의 마술 때문이다.




4.


어떻게 할까?


내 쓸모를 못 느끼는 사람과의 관계는 정리하련다. 나도 선톡 안한다. 나도 그 사람 효용성이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 그게 이 세상 인간관계 국룰이다.


그 사람들과 옛날 한 때는 정서적 공모 관계가 더 두꺼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공모 관계는 점점 약해지고, 그에 따라 내 매력도도 낮아지고. 그래서 종합적으로 쓸모가 없어져서 점점 멀어지는 법이다.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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