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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Oct 11. 2022

02.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버티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02.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버티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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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한순간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티켓을 끊고 짐을 싸고,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일을 그만둔다고 말하는 것이 설악산 정상을 오르는 것보다 버겁게 느껴졌다. 먼저 언니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나의 선택을 응원해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어렵게, 어렵게 직장에도 의사를 전했다.


 가장 높은 벽은 부모님이었다. 근 10여 년간 예술 활동을 하며 제대로 된 벌이를 하지 못했던 내가 괜찮은 급여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기뻐하셨다. 거리가 멀긴 했지만, 출퇴근 차량이 있어 편했다.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었기에 아이들에게 활력을 얻기도 했다. 초, 중, 고 아이들에게 체험 안내 및 공연을 하는 일이었는데 지금껏 해온 활동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 잘할 수 있을까? 하며 긴장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만나면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일까? 정기적으로 적금하며 돈을 모을 수 있는 것,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큰 고민 없이 사는 것, 갖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는 것 그밖에도 집 물건이 고장 나거나 필요한 물품이 생기면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돈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도무지 버티기 힘들었다. 학생들만 보고 다니기에는 너무 지쳐있었다. 공연과 체험을 함께 하며 성대결절이 왔고 그만두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가장 큰 이유는 관계였다.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나를 보며 더 버티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출근 일을 며칠 앞두고 부모님께 말을 꺼냈다. 최대한 분위기가 좋은 시간을 고르려 했다. 저녁 시간, 부모님은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고 계셨다. 밖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직장 그만두려고 해요. 저에게 더 맞는 일을 찾아볼게요.” 며칠을 고민하며 뱉은 말. 막상 말을 꺼내니 마음이 차분하게 착 가라앉았다. 걱정이 많은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를 긴장하며 기다렸다.

“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거니?” 아빠가 물었다.

나는 이렇다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올해까지만 다녀보지. 그 고비만 넘기면 몇 년은 더 다닐 수 있다. 아빠도 그랬다.” 아빠가 덧붙였다.

“목도 계속 낫지 않고 이대로는 더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좀 쉬다가 다닌다고 하면 안 될까? 더 다녀야지.” 엄마가 말했다.

이미 연차를 써가며 쉬었고 성대폴립 진단을 받은 당시에 병가를 내어 쉬어봤지만 헛수고였다. 잠깐 쉬는 걸로는 쉽게 낫지 않았다. 한 팀원은 이제 아프단 소리 그만해야 하지 않냐며 다른 팀원들과 일에 지장을 준다고 했다. 나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아빠는 잠시 나의 표정을 보더니 말했다.

“그래. 그만둬라. 목도 아픈데. 그래. 잘됐다.” 생각보다 쉽게 결론지어져 내심 놀랐다. 가끔 아빠는 이렇게 나의 결정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는데 나의 결정을 받아들여 주는 아빠의 말에 울컥했다. 며칠 지나고 나서 “그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하고 지나가듯이 이야기하며 아쉬움을 내비치긴 하셨지만.


 나 이외에 모두에게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기보다 ‘할 말을 마쳤다. 이제 됐다.’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러 간다는 말은 또 언제 하지? 생각하며 함께 과일을 먹다가 방에 들어왔다. 제주도에 가 있을 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처럼. 제주에서는 성대결절 치유를 위해 말을 최대한 아끼고 하고 싶은 걸 하며 편안하게 보내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고민을 잘 털어놓지 못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든 고민이든 무엇이든지 쌍둥이인 언니에게 이야기했다. 부모님은 불안과 걱정이 많았다. 아이 셋을 잘 양육해야 한다는 부담감, 생활비와 양육비에 대한 걱정 등 서로 힘을 합쳐 이해하고 존중하며 든든한 의지처가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힘든 와중에도 어떻게든 우릴 키워주셨고 무엇보다 이렇게 낳아주셔서 세상 빛을 볼 수 있음에, 삶을 살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부모님께 감사하다. 지금 나의 마음 상태의 원인을 발견하려면 부모님과의 관계, 어릴 때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탐구해보는 것이 좋다. 과거에 겪은 환경, 부모님의 양육 방식이 나의 기질과 성격에 이런 영향을 미쳤구나. 내 마음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 반면에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나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종이에 적어보면서 찾아갈 수도 있고 주위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혼자서 발견하기 어렵다면 전문상담가와 상담을 통해 나의 기질과 강점, 약점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달라지는 인연과 환경에 따라 성격은 변화하기도 한다. 자신의 기질을 보다 잘 파악하면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떻게 극복하면 좋은지 나만의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어떤 걸 할 때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하고 즐거운지를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쌓이면 세상이라는 무대에 조금 더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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