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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jestyy 언제나 Jan 21. 2021

누구나 자신의 주인이 될 권리가 있다

남편에게 충격을 주려 친딸을 살해했다는 여자의 기사를 보고 분노와 함께 생각에 잠기게 되어 이 글을 씁니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 아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포에 불과했던 작은 점을 생명으로 키워내 세상에 내 놓았으니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나도 그런 엄마였을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모든 기대와 계획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획과 노력에 의해 살아왔으니 출산도 육아도, 아이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새끼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왜 그러지?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는 것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임신 기간을 거쳐 내 몸을 회복하는 동안에도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게 된다. 24시간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기는 일은 내가 온전히 ‘나’로서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족쇄다. 그렇게 채워진 족쇄를 견뎌내고 아이가 성장하지만 그 기쁨과 희열은 온당히 나의 것이 아니다.      


아이는 스스로 큰다. 내가 키웠다고 생각하는 순간, 보상을 담보하게 되고 그것은 비극의 씨앗이 된다.      


아이의 세포가 분화하고 커 가는 과정은 엄연히 말하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일궈낸 성과다. 그러니 그 성과를 스스로 누리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는 자아가 생기고 자존심과 고집이 생기며 성격이 형성된다. 

엄마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먹이고 키웠으며 내가 가르쳤는데 왜 나와 다른 존재인지를 원천적으로 이해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엄마이기에 이해해야 한다. 사랑하는 존재이기에 더욱 더 이해해야 한다. 다른 존재임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 아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아이를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세상에 내어 놓았으니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엄마의 몫이다. 한 마디로 나의 책임을 완수하고, 스스로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행하는 일이지 아이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로운 생명의 시작은 영원히 없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커 가는 아이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가 되는 영광을 누림에 감사하며 그 행복감이 또 다른 행복의 밑천이 될 수 있도록 엄마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나야말로 아이를 내 소유로 여긴 적이 있으며, 내가 없이는 아이가 삶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었다. 아이는 나의 소유가 아니며, 혼자 바로 설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다. 그리고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아이를 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토록 바라는 일을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기심의 발로다. 아이를 위한다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 뒤에 숨은 이기심일 뿐이다.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두렵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또한 작은 아이에게 기대어 의지하는 집착의 마음이다.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아이는 내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을 나의 것이라 생각하는 마음과 같다. 엄마는 그렇게 세상에 아이를 내어 놓는다.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기르고, 기다리고, 가꿔간다. 이런 과정을 게을리 하면 아이의 순간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가면 그 뿐이고, 그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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