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을 거치는 시절 동안 나 스스로를 참으로 고고한 존재라 생각했다. 그것이 고집 세고 편협함의 발로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내가 가진 얄팍한 지식을 기반으로 고고하고 당당한 존재라고 믿었다.
그 시절 나는 만화책에 빠져들었다. 하루에 몇 권씩 만화책을 읽으면서, 세상은 만화책 속의 모습처럼 주인공에 의해 술술 흘러가는 배경이라고 믿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니 당연히 실제 세상 역시 만화처럼 술술 흘러가게 되리라는 믿음과 자신감은 당연히 뒤따랐다.
그런데, 내가 읽은 만화 중에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만화가 있다. 그 만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저 말이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정확한 워딩이 맞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내게는 아직도 가슴에 남은 울림이 큰 말이었다. 그동안 내가 본 만화 속 주인공들은 갈등도 있었지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저 만화에서는 저 문구가 자주 등장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원하는 것들이 상충하고,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하며,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뒤섞인 채 막을 내렸다.
처음엔 “다음 편에 계속”이란 말을 계속 찾았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아는 만화랑 다른데~’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 빠르게 읽느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건가’ 싶어 한 번 더 읽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주제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자의식과잉 상태였던 나는 저 세계관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고, 처음에 느낀 어리둥절함은 실수였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게 오만했을 시절에도 저 말의 무게와 의미에 자주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더 자주 저 말에 공감하게 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고 회의론에 빠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기회도, 희망도, 실패도, 불행도 결정된 것이 아니기에 걱정이나 미련은 내버려 두고 앞을 향해 나서라는 말이다. 만화책에서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제각기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지만, 알 수 있는가. 그들의 앞날이 180° 다르게 전개되었을지?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