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부녀의 혼자 제주살기 여행 (intro)
날이 좋아 떠납니다
제주여행의 인기는 어느 정도 지나면 그치겠지 했지만, 해가 갈수록 사람들의 제주 사랑은 커져서 2박3일 3박4일의 코스가 아닌 제주 한달살기가 한참 유행하고, 퇴사하고 한번쯤은 제주로 떠나야할 것 같이 제주 여행은 관광에서 그치지 않고 문화로 자리잡아 왔다.
제주로 떠날 즈음은 효리네민박과 신혼일기2가 한참 방송되고 있어 제주의 인기가 더욱 높았을 때고, 제주 한달살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때다. 나 또한 막연하게 제주 한달살기에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남편이 있는 몸인지라 쉽게 마음먹기도 입밖에 내기도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3월초 남편과 함덕에서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3월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5일 가량 혼자 제주 여행을 다녀오고, 7월 중순 여름휴가 겸 오사카 여행 후에 3박4일 남편과 함께 제주에 오긴 했지만, 다시금 제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 3일 9월의 첫 일요일 오후 드라이브 삼아 간 경기도 광주의 카페의 야외 해먹에 누워 바라본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야외에 누워 낮잠을 자기에 딱 좋은 계절. 남편에게 불쑥 제주로 한달간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 남편은 제주를 다녀오고 싶다면 다녀와라. 하지만 한달은 길다며 그냥 며칠 다녀와라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날이 너무 좋고 해가 너무 좋아서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남편에게 한달만 다녀오면 안될까 재차 물었다. 돈도 많이 들텐데, 내가 딱 100만원 아니 50만원만 쓰고 오겠다며 되지도 않는 떼를 썼다. 이미 9월 초 첫 주말이 지나고 10월 초면 추석연휴가 시작되기에 당장 떠난다 하더라도 한달을 채우기엔 무리가 따랐다. 10월 초 시아버지 칠순을 기념하며 온 가족이 강원도 정선의 리조트로 여행을 가기로 일찌감치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 수요일 친정엄마의 생신 기념으로 친정 식구들과 조촐하기 저녁을 먹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당장 떠나기도 어려웠다.
실제 비행기 티켓을 찾아보고 저렴하고 출발시간이 괜찮은 스케줄로 맞춰보니 목요일 점심에 떠나 딱 3주 후 목요일 오전에 오는 일정으로 맞춰졌다. 안그래도 남편은 5주는 기니 3주만 다녀와라고 하던 차에 22일 둘다 딱 좋다는 말이 떨어졌다. 엄마의 생신 다음날 떠나 추석 전 주말에 돌아오는 일정이 맞춤이었다. 비행기 표도 왕복 6만5천원 남짓이었다. 남편도 나도 흡족한 스케줄과 금액이었다.
하지만 막상 남편의 허락이 떨어지고 비행기 표를 예약하자 덜컥 겁이났다. 남편에게 그냥 가지 말까? 라고 은근슬쩍 물었지만 남편은 편히 다녀오라고 했다. 나 없으면 외롭지 않겠냐고 밥 잘 챙겨먹을 수 있겠냐고 물으니 당연히 외롭겠지만 밥 잘 챙겨먹고 있을테니 재밌게 잘 다녀오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참 좋은 남편이다. 절대 딴여자 만나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니 나나 딴남자 만나지 말라고 누가 누구를 걱정하냐고 되려 묻는다. 누가봐도 남편이 더 걱정할 상황이지만, 참 좋은 우리 남편 누가 감히 뺐어갈까 시도때도없이 무섭다.
그렇게 그날 밤 두려운 마음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을 자고, 월요일부터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짐이야 금새 싸겠지만, 집사람 없는 집은 금새 표가 날 수 있으니 널부러진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여름이불을 거두고 가을이불로 갈고, 냉장고 속 금새 상할 음식들은 얼른 요리 해 먹어치울 심산으로 꺼내두고 짱아찌와 김치류는 한쪽에 잘 넣어두었다.
우렁각시 없을 동안 먹으라고 남편이 좋아하는 각종 냉동 식품을 마트에서 주문해 피자며, 만두며, 소세지도 채워두고, 혹시 몰라 컵라면이며 과자, 레스트로 식품들도 사다 두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모닝빵도 한봉지 사고, 참치캔이며, 통조림햄이며, 김도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당분간 몸에 나쁠 음식만 먹을 남편을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했고, 이렇게라도 보내주는게 정말 고마웠다. 행여 굶지는 않겠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에서 인스턴트 음식들을 사 나른 것이다.
걱정하실 친정과 시댁에는 이야기를 일체 않기로 했다. 직장을 그만둔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야기 드리는 것이 불효겠지만, 걱정을 끼쳐드리는 게 싫어 말씀드리지 않기로 이야기를 맞췄다. 너무도 다행이도 큰 탈없이 무사히 잘 다녀왔고, 남편도 나도 그 사이에 별일이 없었다.
남편이야 아내가 없으니 같이 저녁 먹으며 흥을 돋아줄 사람이 없고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매일 저녁을 조촐이 먹고 부실하게 사먹고 약속도 없고 할일이 없으니 밤마다 실내 자전거를 타 살이 2키로 가량 빠졌고, 나는 매일 신나게 먹으며 부어라 마셔라 하다보니 3키로 가량이 쪘다.
살이 빠진 남편과 재회할 때는 부쩍 빠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찌나 안타깝고 미안한지 워킹맘이 회사 나갈 때 기분도 이러하겠다 싶은 생각이 조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