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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단상

예상치 못하는, 흔한 하루

2023.5.9.

by 하얀밤


출근을 해서

내가 일하는 2층으로 올라갔는데

꺾인 복도로 휙 숨어드는

고양이 꼬리를 보았다.


동료들과 인사를 하다가

지난주에 주차장에서 내 차를 긁은

A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복사실에서 나던 이상한 냄새의 원인이

낡은 현수막 두루마리를 담요 삼아 숨어 있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고양이 네 마리라는 걸 알았다.


사람이 없는 연휴 3일 동안 고양이가 와서 낳았는데

어젯밤새 복사실 문이 닫혀 있어서 새끼를 못 만나다

오늘 아침에 사람들에게 목격당하고 있었다.


시청에서 신고받고 나온 사람이

새끼 고양이를 지금 내보내면 죽는다 해서

졸지에 고양이가 있는 직장이 되었다.


A를 주차장으로 불러 목격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빗살무늬가 새겨진 내 차 앞바퀴 위를 쓸면서

이 부분은 자기가 한 게 아니라 했다.


평소 말 없던 20대 남자 동료는

고양이는 3시간마다 우유를 먹어야 한다던데,

배변을 할 수 있게 어미가 도와줘야 한다던데,

동물농장을 부를까요,

야단이 났다.


퇴근길에 집 반대편으로 핸들을 돌려

한 시간 거리의 서비스센터로 갔다.

"견적 크게 내주세요."라고 건조하게 말했다.

그룹장이라는 분이 턱을 쓰다듬으며

"컴파운드로 지울 수 있겠는데요. 그냥 미수리 처리 하시죠.

요즘은 이 정도로 범퍼 갈 수 없어요.

괜히 도색한다고 렌터카 타면 귀찮잖아요."

해서 고민에 빠졌다.


집에 와서 아이들 먹을 저녁을 준비하는데

아들이 어버이날이라고 케이크를 사 와서

저녁 준비하던 걸 치웠다.


일 년은 갈 것 같던 달력 위 마른 꽃다발을

딸이 준 카네이션으로 교체하며 고양이 이야기를 해줬다.


A의 거짓말과

말 없던 직원의 발랄함과

새끼 고양이 네 마리와

케이크, 카네이션이

동시에 존재했던 하루.


여느 날 같은,

예상치 못한 것들이 가득한

살아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있을

흔한 하루.




이 고양이들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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