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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단상]여행은 삼대가 같이 하는 게 아니다
2023.8.5.
by
하얀밤
Aug 5. 2023
친정 엄마 칠순 기념으로 서유럽에
다녀왔다
.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삼
대 여행을 계획한 걸 후회한다.
이탈리아가 45도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
는
여행 떠나기 3일 전에 말했
다
"왜 그런 데를 가자고 한 거냐?"
친정 엄마만이 누를 수 있는 내 발작버튼이
꾸욱
,
제대로 눌러졌다.
유럽은 엄마가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한 곳이었다.
엄마가 건강할 때 가려고 무리를 하며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너
무 서운했다.
엄마를 위해 가는 거라는 말은
받
아들여지지 않았다.
여행 시작부터 목적이 흐려졌다.
여행 3일 차에 엄마가 결국 터졌다.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
했다.
여기까지 여행 왔는데 왜 하하 호호 웃지
않
느
냐며.
만년설이 보이는 스위스 산을
배경으로
한 엄마는
수시로 투덜거리고 나를 노려봤다.
아이들까지 챙겨야 하는 나에겐 이중고였다.
스위스 높은 산 중턱에 낀 안개와
넓은 초원이,
그 낯선 것들이 더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나는 스위스
에
꼭 다시 오겠다고 결심했다.
엄마의 투덜거림에 익숙해질 무렵,
7살 조카를 데리고 온 동생이 터져버렸다.
힘들기로
유명한 서유럽 패키지에 7살 짜리를 데려오는 걸 걱정하는 나를
원망하던
동생이었다.
조카는 피곤한지 네다섯살처럼 어리광을 피웠고
동생은 7살 조카를 안고 업고 다니다 지쳐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조카가 열이 나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조카에게 마스크를 씌우지 않았고 차가운 음료와 젤라또를 사 먹였다.
마스크와 따뜻한 물을 권하는 내 말
에
언짢아했다.
이 부분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딸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침을 튀기며 기침을 하는 조카에게 나는 웃어줄 수 없었다.
나는 조카
의
건강에 더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조카는 여행 내내 폐렴 환자처럼 기침을 했다.
같은 그룹 사람들 중에 기침 환자가 늘어갔다.
급기야 동생과 엄마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기침하는 아이에게 찬 것을 먹이는 것에 대해
엄마가 한 마디 한 것 같았다.
아, 나는 알고 싶지 않은 걸 알아버렸다.
엄마가 장남인 동생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나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수위가 낮음
을
.
따로 사는 사이라서 몰랐던 것들을, 몰라야 좋은 것들을
12일간 붙어 다니며 알아버렸다.
상처받은 내 마음이 결국 소화불량을 유발했다.
런던에서 먹는 피시 앤 칩스는 맛도 그저 그랬고
위장에 걸려 메스꺼움을 유발했다.
이탈리아의 더위에도 멀쩡했던 내가
20도 중반의 런던에서 휘청거렸다.
우리 아이들은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외할머니와 외삼촌에게서 거리를 뒀다.
우리 가족은 쭉 따로 다녔다.
사진으로만 보던 콜로세움의 위엄과
에펠탑의 웅장함과 모나리자 그림의 온화함에 잠깐씩
가슴속 먹구름이 걷혔으나
내 마음은 쭉 흐림이었다.
무거운 마음이 내 표정에 드러났는지
가이드가 말했다.
"여행은요. 삼대가 오는 게 아니에요.
제가 20년간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거예요.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장성해서 따로 살다가 여행을 오면, 몸이 고단한 채로 열흘 넘게 보내다 서운함이 쌓여요.
예전에 왔던 자매는 각자 가족을 데리고 왔다가
결국 싸우고
울면서 돌아갔어요."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게 뭐냐면,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단행한 것이다.
엄마의 성격과 동생의 성격을 잘 알았는데도,
되돌릴 수 있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
괜찮을 거라며 눈 감았었다.
자신을 속인 대가가 이렇게 크다.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 점이 참 많다.
배운 점을 하나하나 기록해야겠다.
잊지 않도록.
어쨌거나 다시 가고 싶은 융프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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