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여행 단상]여행 중 만난 사람들

2023.8.6.

by 하얀밤


오늘은

12일간의 서유럽 패키지여행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을 떠올려 봤다



#1

가이드의 좌청룡 우백호는 나야 나


가이드 옆엔 언제나

좌청룡 우백호가 있었다.


4인 가족의 아버지인 두 사람은

가이드가 이동할 때마다 사람들을 밀치며 나아가

가이드 양옆에 붙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그룹에 아이만 열 명이었다.

병풍처럼 시야를 가린 땀 젖은 장신의 등짝 틈으로

아이들은 발돋움을 하며 명소와 명작을 감상했다.

아저씨 등짝만 보고 지나치는 것들도 많았다.

학익진을 치고 걷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가이드가 설명하는 중에 질문도 많았다.

가이드가

"모범생이 있어서 설명하기가 힘드네요"

라고 눈치를 주어도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밝았다.

그들의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걸.


모범생 아저씨들은

패키지여행을 가성비 있게 즐긴 걸까.

많이 듣고 봐서 여행이 훨씬 보람찼을까.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뒤로 물러나주는 배려를 바란 내가 욕심을 부린 걸까.




#2

왜 오셨어요?


"아, 여기는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여길 올라가라고? 난 못 가!"

"아, 집에 가고 싶구만!"

"담배 좀 한 대 피게 차 좀 세워 주쇼."


이 모든 대사를 쏟아낸 주인공, 투덜이 아저씨가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포스가 만만치 않았다.

양손은 허리춤에 (담배필 때는 한 손만 허리춤에)

미간에는 언제나 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아저씨의 아내는 웃는 법이 없었으며

아들 둘도 여행 내내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담스 패밀리가 연상되었다.

나는 그 가족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행 내내 지켜봤다.

저들은 왜 여행을 온 걸까?

마지막날까지 억지로 쫓겨온 듯 있다가 간

그들의 여행 동기가 지금도 궁금하다.




#3

다들 어디 있다 오셨어요?


대기가 길기로 유명한 바티칸.

예상 대기 시간이 두 시간쯤 된다는 말에

네 시간이 아닌 게 어디냐며 다행으로 생각하고 줄을 섰다.


가이드가 누군가는 줄을 서야 하니

팀별로 적절하게 양보하면서 화장실을 가거나

잠시 카페에서 음료를 사 오라 했다.

33도에 육박하는 날씨는 손선풍기로도 이겨내기 힘들었다.

너무 더워하는 아이들을 길 건너편 카페에 앉혀두고

우리 부부는 꼬박 2시간을 성벽에 기대어 대기를 했다.


드디어 우리 그룹 입장 차례가 왔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러 간 사이

사라졌던 사람들이 어디선가 우르르 나타나 우리 앞에 섰다.

가족 전체가 사라졌다가 나타난 팀도 있었다.


2시간 동안 서 있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더위도 먹은 것 같은데 한 마디 할까,

아주 잠시, 잠시, 잠시 생각했지만

교황님 가까이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영웅이었던 가이드


가이드는 다 알고 있었다.


투덜이와 얌체와 좌청룡 우백호의 존재를.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묵묵히 참아주는 사람들의 침묵을.

어른들의 발걸음에 종종 거리며 따라오는 아이들을.


자칫하면 다칠 수 있는 지친 마음들을 다독이며

생판 모르는 사람들 서른여 명이 모인 무리를

큰 분란 없이 12일간 이끌었다.


여권을 넣은 가방을 식당에 두고 온 사람 앞에서도,

숙소에 가방을 두고 온 걸 다음 날에야 알게 된 사람 앞에서도,

전날 묵은 숙소의 키를 다른 나라에 와서야 꺼내는 사람 앞에서도,

밤 11시 넘어 도착한 숙소가 잘못 전달받은 곳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도,

요소수인지 뭔지로 차가 퍼져서 갑자기 일정에 변동이 생겼을 때도,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해 냈다.


그녀는 나보다 10살 정도 많아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보며 커다랗고 듬직한 산을 떠올렸다.

그녀의 침착함과 대담함, 능숙함에 여행 내내 매료되었다.


그녀라고 처음이 없었을까.

그녀라고 우는 날이 없었을까.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산전수전이

그녀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 그녀가 보인 행동을 통해

직업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


이번 여행에서 본

먼 나라의 그 어떤 화려한 작품보다도

작고 다부진 몸의 그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이드처럼 멋지고 웅장한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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