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이문영 <짧은 소설 쓰는 법> '을 읽고

by 하얀밤
매일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장'으로 피어나는 장면과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장면의 빛과 소리, 향을 품은 단어들이 두둥실 떠올라 앞뒤를 오고 가다가 자리를 잡고 마침내 문장이 됩니다. 완성된 문장을 중얼거려봅니다. 문장이 증발하기 전에, 문장 속에 담긴 감성을 내가 잊기 전에, 아니 잃기 전에 어디든 쓰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낍니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읊조리는 장면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 머릿속에서는 잊혀도 마음에 자국이 남는 애니메이션 속 '이름'처럼, 미처 쓰이지 못한 문장들이 마음에 자국을 여기저기 남깁니다.


문장들을 종이에든 화면에든 시각화시켜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보여주고 싶고, 또 사람들에게 보여줘서 공감을 얻고 싶습니다. 그래서 엄마로, 직장인으로 지내며 하루에 한 시간도 내 시간을 갖기 힘든 상황에서도 틈내어 글을 쓰려고 하나 봅니다. 틈틈이 쓴 글이 브런치에 발행될 때, 내 마음이 예쁘게 포장되어 누군가에게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에 글이 발행되었습니다'라는 말이 쓰인 화면이 저에겐 선물이고요.


제가 실제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쓰기에도 벅찬 이 마당에, 더 사치를 부리고 싶습니다.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서 나를 대변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죠. 인물이 나와 같은 일을 겪게 하고도 싶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해보게 하고 싶고, 내가 극복하지 못한 것을 극복하게도 만들고 싶습니다.


빙빙 둘러말해도, 결국 그런 글은 '소설'이라 불립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소설을 쓰고 싶나 봅니다. 내가 소설을 쓴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대리 만족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짧은 소설 쓰는 법>이라는 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상처와 슬픔을 다독이는 소설 창작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까지 한데 어떻게 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상처', '슬픔', '다독인다'는 세 단어는 제가 왜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저는 제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예민함과 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그냥 무던하게, 무심하게 지나갈 수 있는 찰나를 쪼개고 부수어 가슴에 품는 것은 천형과 같습니다. 이 형벌 같은 심성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소설을 읽으며 자주 느낍니다.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주는 안도감이 얼마나 큰지요.


아직 너무나 부족하지만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제가 겪은 아픔들을 인물에게 녹여내어 제가 받았던 울림들처럼 누군가에게 울림을 전하고 싶습니다.

소설을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고 혼자 무작정 몇 자 끄적여도 봤는데 소설이 에세이보다 몇 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주인공도 설정해야 하고, 이야기의 짜임새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독자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낼 수 있도록 묘사도 잘해야 하는데, 시도하면 할수록 작가들의 글솜씨에 감탄만 할 뿐입니다. 제가 점점 작게만 느껴지는 이 상황에서, 과연 저도 소설이라는 걸 쓸 수 있을까요?


소설로 나를 풀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에 작가는 이렇게 답합니다.

내 아픈 이야기를 쓰라는 게 그 아픔을 모두 다 드러내라는 뜻은 아닙니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 일을 살살 보듬어, 마치 조개가 자신을 상처 입힌 모래 알갱이를 분비액으로 곱게 둘러 진주를 만들듯이 새로운 것으로 승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문학 속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문영 <짧은 소설 쓰는 법> p53
가슴에 어떤 응어리를 가진 사람들이 작가가 됩니다.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속에 맺혀 있는 것이죠. 그것을 훌륭하게 풀어낼 때 소설이 됩니다.

이문영 <짧은 소설 쓰는 법> p54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걸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어떻게 안고 살아갈 수 있는가를 살펴본다는 뜻입니다.

이문영 <짧은 소설 쓰는 법> p216


아무리 못 쓴 글이라도, 쓴 날은 안 쓴 날과 다릅니다. 글을 쓰는 날은 '나'라는 화분에 물을 주는 날입니다. 훨씬 생기가 돋고 외부의 압력에도 탄력 있게 대처합니다. 나라는 사람의 작은 조각이나마 풀어내며 분명히 알게 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요. 나를 쓰는 것을 넘어, 나를 품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쓸 때의 힘은 얼마나 어마어마할까요.


소설이든 에세이든 글을 쓰려하다 보니 독서량이 더 늘어납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늘어난 건 아닌데 바쁜 시간 속에서 틈을 찾아 책을 읽게 됩니다. 저의 부족한 부분을 알았기 때문에 메우려는 본능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책을 읽을 때 내용뿐만 아니라 어휘, 문장까지 봅니다. 감탄이 절로 나는 어휘나 문장은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도록 Google Keep에 옮겨놓습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메모들이 제 보물들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함을 느끼기 시작한 저를 독려하는 문구도 보이네요.

스티븐 킹은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해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다."

이문영 <짧은 소설 쓰는 법>


나를 진정 위로하고 다독이는 방법이 글쓰기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응원뿐만 아니라 소설 쓰기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을 위한 이론이나 요령도 담겨 있습니다. 옆에 앉아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친절한 선생님을 연상시키는 책입니다. 이 선생님은 소설을 쓴 경험도 있고 노련하기까지 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좋은 책을 만나 너무나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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