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여럿이서 읽어봤습니다.

'김애란 <비행운>'을 읽고

by 하얀밤


<비행운>은 직장 동료들과 만든 독서클럽에서 처음으로 채택한 책입니다. 배려심 많은 클럽 회원들이 저에게 첫 책을 선정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평소 읽고 싶었으나 바빠서 못 읽었던 책이 있으면 말해보라길래 조심스레 "김애란의 <비행운>이요..."라고 했습니다. 다들 무슨 책인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김애란의 문장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신이 나서 부연 설명하자 다들 제 들뜬 모습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습니다.

"아, 싫다는 건 아니었어. 그나저나 이렇게 신나 하다니. 꼭 읽고 싶어 지네!"


그렇게 시작된 2주간의 독서.

저는 집 책꽂이에 꽂힌 책을 빼내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회원들은 도서관에까지 가는 발품을 팔았습니다. 소장한 책이 이미 많은 사람들이라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할 거라 했습니다. 독서클럽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저는 시간을 내어 도서관에 들르는 그들을 보며 괜히 머쓱해졌습니다. 제가 그들의 입장이어도 흔쾌히 그렇게 했겠다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기한이 정해지고, 혼자 읽는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틈을 내어서라도 책을 펼치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한다는 건 핑계였고 나도 충분히 책을 읽을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문제는, 책의 초반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우울함'이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책이었기에 좋은 책이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걸 느꼈나 봅니다. 책 속 주인공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배경 속에서 들끓는 벌레에 시달리고, 무너져가는 집에서 쫓겨나고, 홍수에 떠내려가자 괜히 제가 곤란한 기분에 빠져서 회원들의 눈치를 보았더랬습니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사무실 반대편 끝에서 열심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동료의 얼굴을 힐끔거렸습니다. 책 속 주인공처럼 저 사람도 우울 속으로 떠내려가면 어쩌나 하면서요. 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생각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했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책에는 보이지 않는 분수령이 있었습니다. 음울한 SF 같던 초반부를 지나니, 삶에 서툴지만 그 서투름으로 인해 더 싱그러운 젊은이의 삶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지만 문제 설정조차 하기 어려워 뿌리 없는 나무처럼 부유하며 불안해하다가도, 금세 젊음 하나로 모든 걸 퉁치는 객기를 부리는, 그런 젊은이들의 삶 말입니다. 그들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카메라 렌즈에 눈을 갖다 댄 것 같았습니다. 20대에 쓴 내 일기장을 누가 훔쳐간 게 아닐까 하는 망상에 젖을 때 즈음, 동료가 찾아와 까르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마지막 챕터 읽어봤어? 참나.. 그거 완전 내 젊을 때 이야기더라고. 읽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아직 마지막 챕터까지 읽지 못한 저는 예상치 못한 강력한 예고편을 접하고 읽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마지막 챕터인 「서른」은 서른이 된 주인공이 고시생 시절 독서실에서 알게 된 언니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담담하게 풀어낸 편지글입니다. 다단계에 빠져 자신이 아끼던 사람까지 다단계에 밀어 넣은 과거를 회상하는 글을 읽으며 주인공이 죽는 길을 선택하는 것으로 끝나면 어쩌나 싶어 읽는 내내 무척 조마조마했습니다. 다행히 김애란답게 그런 이조차 보듬으며 끝을 맺더군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책의 내용이 자신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던 동료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책 속 주인공과 어디가 그렇게 닮았던 걸까요? 고시생으로 지냈던 것? 설마 다단계에 빠졌던 건가? 그녀의 이야기를 독서 모임 때 꼭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책의 내용과 가까운 사람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는 것 또한 혼자서 읽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2주 뒤, 우리는 똑같은 책을 들고 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우리의 공통된 감상은 '너도 나도 젊은 날을 살아내느라 수고했다'였습니다. 중년이 된 우리는 이 책을 발판 삼아 과거로 돌아가 젊은 날의 시간 속을 하염없이 헤엄쳤습니다. 막연한 불안을 '언젠가는'으로 시작하는 희망으로 하나씩 치환하던 그때. 남들 따라가는 길에 질려 나만의 길을 만들어보겠다고 방향을 틀 때의 두려움. 그 두려움을 딛고 일어선 용기가 지금의 굳건한 두 발을 주었음에 공감하고 서로를 응원했습니다.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겪는 다양한 '非幸運'의 상황과 비슷한 것을 겪어낸 사람들이었고, 현재는 각자의 자리에서 '飛行'하는 '구름(雲)'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확인했습니다. 비슷한 촉을 가졌으나, 촉의 결이 다름도 확인했습니다. 같은 문장을 다르게 느끼고, 마음에 남는 문장도 다른 걸 꼽았으니까요.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취미라 생각했던 독서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건 지금도 저에겐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독서 클럽을 시작한 걸 후회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문장마다 피어오르는 감상들은 오로지 저만의 배경지식에 기초하고 있기에 입 밖으로 꺼내어 음성으로 변환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낯섭니다. 제 치부를 드러내는 기분입니다. 함께 하는 이들이 마음 넓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제가 어떤 말을 하든 이해해줄 것이라는 걸 알기에 감히 김애란의 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김애란의 글은 언제나 내면의 내면의 내면을 파고드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이 책과 함께 한 독서 모임은 우리를 무장해제시켰습니다. 같은 듯 다른 서로의 내면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다른 사람과 읽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동료들이 추천한 책을 읽게 되겠지요. 새로운 것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저의 틀을 깰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족.

우리가 놀라서 입 모아 얘기했던 것.


"이 글을 서른에 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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