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좋아하려는 이유

2023.4.5.

by 하얀밤


봄비가 지독히도 세차게 내렸다.

딸은 비 오는 날이 싫다고 했다.

나도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하지만 무릇 어른이란,

비 따위에게 지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야."라는

12세 소녀에겐 전혀 와닿지 않은 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빗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며

차 앞유리를 시원하게 두들겼다.

묵은 먼지가 흘러내리는 걸 보니

공짜 세차를 하는 듯해서 비가 고마워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비를 좋아했다.

어린 세 남매를 거의 홀로 키우다시피 한 우리 엄마는

비 오는 날이 좋다고 했다.

비 오는 날엔 가게에 손님이 적었으니까.

어린 나는 엄마가 돈을 덜 벌어서 싫어할 줄 알았는데

좋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비 오는 날에야 비로소

가위와 고데기가 굳은살 박힌 엄마 손을

잠시나마 떠났으니까.


세 남매를 먹여 살리는 가위와 고데기를

잠시나마 마음 편히 내려놓게 해 줬던 비를

엄마는 지금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이왕이면 이런 세찬 비라도,

아니 더 세찬 비라도

기꺼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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