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지독히도 세차게 내렸다.
딸은 비 오는 날이 싫다고 했다.
나도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하지만 무릇 어른이란,
비 따위에게 지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야."라는
12세 소녀에겐 전혀 와닿지 않은 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빗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며
차 앞유리를 시원하게 두들겼다.
묵은 먼지가 흘러내리는 걸 보니
공짜 세차를 하는 듯해서 비가 고마워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비를 좋아했다.
어린 세 남매를 거의 홀로 키우다시피 한 우리 엄마는
비 오는 날이 좋다고 했다.
비 오는 날엔 가게에 손님이 적었으니까.
어린 나는 엄마가 돈을 덜 벌어서 싫어할 줄 알았는데
좋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비 오는 날에야 비로소
가위와 고데기가 굳은살 박힌 엄마 손을
잠시나마 떠났으니까.
세 남매를 먹여 살리는 가위와 고데기를
잠시나마 마음 편히 내려놓게 해 줬던 비를
엄마는 지금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이왕이면 이런 세찬 비라도,
아니 더 세찬 비라도
기꺼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