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뒷모습

천천히 보고싶은 순간들

by 시옷


반려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치울 때 비로소 그가 나의 짝이라는 걸 깨닫는다. 심지어 가끔은 사랑받고 있구나 실감할 때도 있다.

짝 반伴과 짝 려侶를 함께 쓰는 반려라는 단어는, 그러니까 '짝'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와 인생이라는 길을 짝이 되어 걸어가고 있다. 걷는다고 쓴 이유는 둘 다 조금씩 늦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서두르며 살지 않는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둘 다 20대 중반에 아팠고(반려인은 부상, 난 정말 몸이 아팠다) 그 일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었다. 아, 쓰고보니 정말 그렇다. 나는 그와 살아온 길의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었구나. 성향이 정반대에 가까운 두 사람이 서로의 반려자로 살겠다고 결정한 게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핵심적인 부분이 겹쳐 있었다.

그런 나의 짝이 설거지를 하고 개수구를 비우거나 건조기에서 갓 꺼낸 뜨거운 옷가지와 수건 등을 척척 접을 때, 나는 인생을 정말 함께 나누고 있구나 실감한다. 결국 작은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니까.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은 나의 내면을 깨우는 일이다. 우리가 일상을 제대로 나누고 서로의 필요에 손을 보탠다면 결코 무감해질 수가 없다. 반려인과 함께 살림을 하며 내 인생은 오로지 나만이 살아낼 수 있지만 동시에 만족스러운 일상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이의 협력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을 체감한다.

살림은 별 볼 일 없는 일상의 의무가 아니다. 내 안으로 숨고 싶은 한없이 게으르고 무감한 나의 자아를 깨워 일상을 계속 돌보도록 초대하는 일이다. 그래서 살림하는 반려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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