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위로하는 나만의 언어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너는 자주 토닥거린다.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토닥거리다 잠든다.
- 김재진 시인 -
꿈 분석을 5년 전에 시작해 3년 정도 받았었다. 40대를 건강하게 지내고, 나 자신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심리상담과 차이점은 한 주 동안 꾸었던 꿈 기록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있다. 꿈은 무의식의 보고이기에 자신에 대해 숨길 여야 숨길 수 없는 표현이라고 분석가가 이야기했다. 오직 꿈의 내용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접근하기에 분석가는 어설픈 공감과 이해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주 분석을 받은 지가 8달이 될 무렵, 어느 날 문둥병에 걸린 남자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아버지가 나와 비슷한 또래의 문둥병 남자를 돌보는 것 같았다. 문둥병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나에게 일어나라고 한다. 새벽 같다. 나만 잠을 잔 것 같고, 아버지는 밤새 문둥이 옆을 지킨 듯싶다. 아버지가 나에게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 드니?”라고 물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위로했다. “너도 애썼다.”라고 말했다. 마치 시체 썩은 냄새처럼 퀴퀴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병원으로 향할 것 같다. 이 문둥이가 죽을 것 같다.
분석가는 문둥이는 나 자신일 수 있고, 이제는 그동안 닫혀 있던 부분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꿈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분석을 받고 나서 약간의 불쾌함이 있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 심리상담과 자기 분석 작업을 한 것처럼 여겼는데, 이제 나 자신을 열기 시작했다고? 그러나 맞는 말이었다. 피상적인 부분이 조금 걷어지고 본격적으로 나 자신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꿈은 속이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이후에도 꿈은 정신병자가 나타나거나, 내가 보기 싫은 모습으로 나 자신을 비추어 주었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지만 받아들이게 된다. 모두 나의 모습이다.
문둥병 환자 꿈에서 기억이 남는 것은 아버지가 한 말이었다. “어떤 마음이 드니?”, “너도 애썼다.” 나는 이 두 말에서 치유를 받았다. 나에게 아버지는 대단한 존재였다. 친척들과 함께 있는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는 지식 전달자이자, 내가 모르는 수학 문제나 궁금함이 있으면 막힘없이 세세히 안내해 주는 사람이자, 나를 품어주려고 부단히 애썼던 분이셨다.
“어떤 마음이 드니?” 나는 그동안 나 자신과 대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은 깊은 파장을 일으켰다. 내 마음이 어떻지? 그동안 갈등 상황이 되면 내 마음이 어떻지?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자연스레 내 가슴이 알고 반응했다. 먹먹하고, 슬펐다.
어렵사리 내 마음 상태를 알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발견해도 어려움이 많았다. 표현해도 이해받지 못하고, 내 뜻을 오해받은 경험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나를 이해받기 위해서는 정확히 내 감정을 표현해야 하고, 상황에 맞게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표현해 보았자, 상황은 복잡해지고, 공감받지 못할 봐야 현실을 바꾸어야지, 말을 해 보았자 손해이다.’라는 생각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다. 이 두 마음이 나를 가두었다. 그런데 꿈꿈의 아버지, 내 안의 어른 자아가 물었다. “어떤 마음이 드니?” 그 말은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신을 녹여 주었다. 내가 무엇을 표현해도 좋고, 나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꿈의 아버지가 한 말 중 “너도 애썼다.”라는 말은 나를 마치 나를 포옹해 준 것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사실 그동안 나 자신을 변화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나 자신의 상처가 깊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나를 돌보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누구의 인정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팠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나의 무의식에서는 남들은 알 수 없지만, 나의 내면은 알고 있었다.
그 꿈을 꾸던 날, 깨어나면서 울어서 옆에서 잠을 깬 아내는 “무슨 일이 있어?’’라며 놀랐다. 나는 서둘러 "꿈을 꿨어."라고 말하고 내 서재에서 30분가량 앉아서 눈물을 흘린 것 같다. 오래간만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지난날의 나의 아픔에 대한 눈물, 그동안 내버려 두었던 내 안의 문둥이에 대한 미안함의 눈물, 꿈속에서 위로하는 기능의 또 다른 나인 아버지가 있다는 안도감과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시간의 지나고 보니, 그때의 눈물은 애도의 눈물이었다. 새롭게 태어날 나를 위한 나 자신이 흘려주는 아름다운 작별의 눈물이다.
그 꿈을 꾼 후 나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나,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내담자에게 습관처럼 했던 "지금 어떤 마음이 드세요? "를 나에게 진지하게 던져보았다. "너 지금 어떤 마음이 드니?" 내 감정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 물음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단지 살펴보기만 했다. 마치 조용한 깊은 호수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진 듯.
또한,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 있어?"라는 말보다 "어떤 마음이 드니?"라고 묻는다 "무슨 일 있어?"라는 왠지 보고해야 할 것 같고, 알리면 혼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면, "어떤 마음이 드니?" 는 왠지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내 언어가 달라진 것도 있지만 내 마음이 변하니 내가 "어떤 마음이 드니?"라고 물으니 사람들이 왠지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열기 시작하는 듯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