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잔 Aug 31. 2021

관계에서 마음 만지기

들어주기와 함께하기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자격을 갖추고 싶어 한다. 또한, 인간은 선천적으로 미움받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다시 말하면, 미움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애덤 스미스-

               


  좋은 관계만큼 위안이 되고 행복한 것은 없다. 가까운 가족에게 위안과 칭찬, 지지를 받아야 하고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이어야 하지만 막상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상담자가 된 후, 부모와 같은 모습으로 나의 자녀를 키우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오히려 자녀 양육에 더 부족해 보이고, 감정조절이 안 되어 불쑥 화를 내어 일관성 있는 부모가 되기는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아이도 나처럼 부모에게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고, 인생의 문제에 대해 부모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다면 어쩌지! 벌써 고민되었다. 대화기술 훈련, 부모 자격 훈련도 받았고, 부모 훈육과 관련된 책들도 틈틈이 읽어보지만, 실전에는 자신이 없다. 머리로는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감정과 생각, 행동은 다 따로 놀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에서 답을 찾아 나가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머리가 복잡해질수록 단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하기로 정했다. 하나는 잘 들어주기와 함께 하기이다. 이는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힘들 수 있지만, 직업적으로 훈련되어 적용해 볼 수 있고, 나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의미를 발견한다면 움직인다. 나도 그러했다.      


  내가 선택한 첫 번째는 잘 들어주는 것이었다. 내향적인 성향이라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싫어도 싫다는 표현을 드러내 놓고 안 해서인지 사람은 나를 포용력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말을 많이 안 할 뿐이지 그리 너그러운 성품은 못 된다. 사람들에게 화를 덜 내서 사람들이 마음이 넓다고 생각할 뿐, 내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직업적으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존중해야 주어야 하는 처지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공감 피로라고 서비스직이나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증후군이 나에게도 일어나 지쳐가고 있었다. 우연히 책을 읽다 하피즈의 시를 발견하였다. 그 구절 중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치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을 듣는 양 들어라.’ 이 말이 나의 묵은 피로감을 말끔히 사라지게 하였고상담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들을 때는 어떠한 편견과 평가 없이 그 사람 그 자체의 고통과 삶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섣부른 조언과 평가도 내려놓고 진정성 있게 듣지 않을까? 내가 무엇을 해 주지 않아도 되고 그저 듣기만 해도 되니 긴장해 있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상담 장면에는 내가 전문가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그의 삶을 온전히 듣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전문가임을 내세우기보다, 그 전문성을 내려놓고 평범한 한 명의 이웃, 친구가 되어줄 때 역설적으로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고 신뢰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아이의 이야기를 다 안다고, 피곤하다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들어보자. 옳고 그름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우선은 들어보자. 하피즈의 시와는 달리 내가 죽어간다고 생각하고, 그 아이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보다, 아이와 함께함을 더 중요한 가치라 생각하고, 그 고운 음성과 천진난만함을 더 들어봐 주자! 그런 생각을 가지니 힘든 상황이거나 복잡해질 때도 분명해졌다. 지금-이 순간의 찰나가 더 명료해지고, 편안해졌다.      


  두 번째는 함께 하기이다. 내가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하는 처지에 있고, 부모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되었다. 역할을 해야 하는 시간을 생각하니 개인 시간은 사라지게 된다. 아이와 놀아준다고 생각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해지고 피해지고 싶어 진다. 억지로 무엇을 하기 위한 피동의 입장이 되면, 즐겁지 않다. 아이의 시간과 내 시간을 분리하지 않으면 좀 더 능동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 동화책을 읽더라도, 내가 예전에 읽지 않은 동화책을 함께 읽고, 읽었던 책이라도 ‘또다시 읽네’, ‘지루하네!’라는 생각만 버리면 늘 새롭게 다가선다. 아이와 무궁화 꽃도 해 보고, 숨바꼭질도 해 본다. 굳이 어른이 즐거운 일, 아이가 즐거운 일을 나눌 필요가 없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함께 놀다가 지치면 따로 놀아도 되고 부담이 없어졌다.      


  좋은 관계가 형성되면 서로를 존중하는 법도 배울 것이고, 성장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혼자서 고민하다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른, 아빠라는 생각만 내려놓으면 아이와는 좋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어른, 아빠라는 권위와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전보다 아이와는 좋은 관계가 형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에서는 만남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내가 어떠한 존재를 만나 획기적으로 성장, 변화되는 것을 이제는 바라지 않지만, 늘 관계 안에서 나의 마음이 만져지는 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그립다. 서로 공명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중심 상담의 창시자 칼 로저스의 상담이론이 다시 나에게 화두를 제시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는 자기실현 성향이 존재하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누구나 성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선 나부터 준비하고 싶다.      




진정성관계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를 제공하는가?


조건이 없는 관심나 스스로타인세상이 만든 조건을 내려놓고판단하는 마음을 제쳐 두고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고내 편네 편으로 편 가르지 않고 공정히 수용해 줄 수 있는가


공감적 이해나는 내 식대로 들으며그 사람이 말을 왜곡하지 않는가정말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바를 들으려고 하는가그 사람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여 내 방식대로 전달해도 서로 가슴이 뚫린 경험을 하였는가? 

이전 09화 나를 다독이는 말은 무엇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