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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리 Apr 10. 2024

고통의 의미

고통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하여

어떤 설문 조사에서 종교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할 때 '고통에도 의미가 있느냐'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종교가 있다'라고 대답한다 해서 다 종교가 있는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들을 종교인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고통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전화위복을 기다리는 마음을 일컫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더라도, 실패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눈물이 눈물로 끝나더라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는 말이 아닐까. 끝내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려는 사람들.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겠다는 노력은 내가 찾지 못하더라도 진정한 의미는 숨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이루어진다. 이런 노력은 여러 종교와 철학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일부러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종교와 철학의 공통점은 고통을 이겨내는 것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고통을 감내해 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더 큰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일수록 존경받고 성자라고 불린다. 기독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신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고통을 이겨내야만 신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 큰 고통을 이 악물고 이겨낸 사람이 천국자리를 선점하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신을 따르기 때문에 세상의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와는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종교와 철학이 고통 이후의 보상에 집중하다면 기독교는 고통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기독교인들은 고통을 감당해내지 못하더라도 신은 나를 여전히 사랑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의학에서 고통은 증상의 일종이다. 배에 병이 나면 배에서 고통을 느끼고 이를 복통이라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를 병나게 하는 수많은 원인들을 모조리 없애면 되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택하는 차선책은 진통제로 통증을 잊게 해 주고, 때론 약으로 때론 수술로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각종 식이요법과 운동, 약의 도움을 받아 배를 튼튼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병을 유발하는 원인은 여전히 산재하지만 더 이상 병이 나지 않는 튼튼한 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삶에서 느끼는 고통 또한 삶에 병이 들어서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나를 지치게 만들고 시험에 들게 하는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들 때문에 병이 든 것이다.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겪다 보면, 신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하게 되는 때가 있을 수 있다. 신이 있다면 내가 왜 고통을 당하겠는가? 나처럼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신 것인가?


하지만 오히려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에 신의 존재는 더욱 명확해진다. 고통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신이 없다면 이 고통이 나에게 찾아왔을 리가 없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기적이라고 하며, 기적은 신의 존재를 암시한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일이 일어난 것도 신의 존재를 암시하게 된다. 모든 것이 우연인 세상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은 있을 수 없다. 그 세상에는 원래부터 '이유'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대해 슬퍼하고 안타까워한다면, 고통의 근원마저 관장하는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 혹은 있어야만 한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여 슬퍼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면 고통의 의미 찾기가 시작될 수 있다. 설령 고통의 의미와 원인을 밝혀내는 데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고통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영과 정신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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