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면 멀쩡한 것 같은데?
몇 년 전부터 여러 루트를 통해 내가 ADD겠구나 추측할 수 있었다.
병명을 알기 전부터도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과 일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명상을 배우고 실천하고 글쓰기도 하면서 ADD 부작용인 낮은 자존감을 어르고 달래며 내 나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굳이 병원에 갈 필요까지 있을까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용쓰지 말고 약 먹고 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돌연 정신과 진료를 결심한 몇 가지 이유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 째는 이상심리학을 배움으로 인해서다.
얼마 전부터 심리학사를 따기 위해 학점 은행제를 활용하면서 이상심리학을 배우게 됐는데 덕분에 정신병, 정신증, 정신장애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알게 됐고 내 상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나는 ADD뿐 아니라 계절성 우울증, 사회 불안 장애, 경증 양극성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임상 증상과 비교해) 알 수 있었다.
정신과를 가도 명상 처방을 내린다고 하니 혼자서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텨왔기에 여러 심리 장애 증상이 확인되고 나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게 됐다.
증상과 정신 장애의 기전을 따져본 결과 사회 불안 장애와 양극성 장애는 명상을 활용해 비합리적 사고와 방어기제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천천히 이겨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뜻밖의 심리 장애 명칭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느낌이 들었고 순간순간 나를 압도하는 두려움과 혼란에 이름을 붙여주고 명상수련해 온 경험을 발판 삼아 수용하고 가만히 지나치는 노력을 해보니 도움이 많이 돼서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ADD와 계절성 우울증은 오랜 경험을 통해 내 힘으로는 어찌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자기 실망의 경험이 누적되기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부분은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 내렸다. 한두 가지가 아닌 어려움이 뒤엉켜 있다는 걸 안 이상 혼자 해결하기보다 약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정신과 진료를 결심하게 됐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들 양육에 부쩍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재 10세, 7세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내가 ADD 행동으로 인해 체계화, 구조화, 지루한 기다림 속에 주의를 붙잡고 있는 일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아이들에게 쾌적한 가정환경을 제공하거나 때 맞춰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고 때 맞춰 씻기는 등의 건강한 생활 습관을 잡아주는 게 너무 숨 막히게 느껴지고 꾸역꾸역 해내다 보니 결국 기본적인 양육을 잘 못해 주고 있다. 더욱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안정적인 공부 습관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잘 이끌어 주지 못하는 내가 속수무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잘하지 못했던 공부를 내 아이가 반드시 잘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가 공부를 잘하도록 돕고 싶다. 무엇보다 행복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하는 소양이 행복지연 능력과 성취 경험이라는 것을 배움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행복지연 능력과 성취에 직결되어 있는 '공부'라는 걸 잘하도록 돕고 싶은 것이다. 성적이 우선이 아닌 아이들이 행복지연 능력을 기르고 성취감을 경험하며 상장할 수 있도록 너무나 돕고 싶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과업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많은 부모들처럼 나 역시 아이들이 행복지연능력을 길러서 꿈꾸고 성취하는 반복 안에서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삶을 살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ADD 엄마는 충동조절의 어려움으로 행복지연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성공이나 성취에 있어서 덜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궁금한 일에 열정을 빼앗기며 살다 보니 행복지연능력을 길러줄 방법을 알 수 없어 너무 속상했다. 더욱이 나로서는 언제나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기 때문에 내 노력들이 헛짓인 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내가 고난스러워서 고치고 싶어 하는 여러 행태가 아이들에게서 그대로 보여지는 순간들을 마주 할 때마다 나의 치료가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린아이는 발달 특성상 '롤모델 모방'을 통해 학습하기 때문에 최고 롤모델인 엄마, 바로 내가 변해야만 한다. 부모가 규칙적이고 질서 잡힌 행동을 못하면서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말로만 가르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대로 내 질병을 내버려 두면 아이들이 나를 경험하고 학습하면서 나와 점점 더 비슷해질 수 있다 생각하니 정신과 치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아이들을 더 잘 키우고 싶어서 정신과에 간다고 하면 나를 아는 지인들은 과한 선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애착 형성이나 사회성이 좋은 편이고 엄마로서 감정도 잘 읽어주고 존중해 주고 자유롭게 방목하는 등 잘하는 면도 많기 때문이다. 종종 나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대부분은 세상에 그만큼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렇게 완벽한 엄마는 또 어디 있겠냐고 한다. 정신 장애보다는 완벽주의를 걱정한다.
하지만 한 지붕에 사는 가족이 아닌 외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나와 내 아이들이 겪는 일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가?' 위로받거나 맞장구치면서 답답한 마음으로 어물쩍 넘길 순 없는 일이다.
그리고 누구나 꿈이 있듯이 나는 내 아이들이 행복지연능력을 갖추고 성취감을 맛보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기 때문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돕고 싶은데 엄마가 되려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정신과 진료를 선택한 이유는 내 상태의 복잡 난해함을 인정했고 그런 나로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싶어서다. 나의 바람은 사실 후대를 잘 양성하고 싶은 중년기 발달 과제와도 일치된다. 만약 당신도 ADD로 의심되면서 아이들 양육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병원을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치료를 통해 나의 행복은 물론이고 아이를 안정적이고 행복한 인간으로 양육할 가능성도 훨씬 커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간발달과정 측면에서 봤을 때도 인간으로서 성취하고 싶은 중년의 인생 과업, 후대 양성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킬 수 있다면 노년에 들어서서 삶을 통합하고 안정감을 찾는 안정적인 단계를 경험하기도 쉬워질 것이다.
더 나은 삶의 경험을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 용기 내 보자.
* 다음 이야기에서는 양육 측면이 아닌 자아성취 측면에서 정신과 진료를 선택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공감하는 분들께 응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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