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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Apr 18. 2021

시골은 무슨.. 아파트로 갈걸 그랬나?

양평 이사후기

결혼하고 얼마 후 LH 전세임대 청약을 넣으러 갔다. 접수자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이런 경쟁률 속에 행운을 기대하기 어렵겠다 생각됐는데 진짜 당첨되지 않았다. 성급한 감이 있지만 나중에 분양받는 것도 힘들 것 같고 받는데도 상환하고 입주할 내 능력이 안될 것 같아 앞으로 청약신청을 안 하기로 결심하고 9년 된 통장을 없애기로 했다.


"정말 청약통장 해지하실 거예요?"


이자도 없는 통장이라 해지하러 은행에 갔는데 종업원이 너무 깜짝 놀랐다. '청약 이거 대단한 놈인가?' 마음이 쎄 했다. 엄마에게 해지 이야기를 전했을 때도 애를 헛으로 키웠다며 충격을 받으셨다. 내가 들고 있을 때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통장일 뿐이었는데 해지하니 정체 없는 큰 아우라가 느껴졌고 알 수 없는 두려움도 느꼈다.


엄마의 충격을 남편에게 전하자 남편이 다시 청약을 넣기 시작했고 그것이 다시 6년이 넘었다. 광명에 살고 있었기에 광명역 앞에 아파트 분양받고 프리미엄만 4억이 붙었다는 이웃들도 몇몇 만나긴 했지만 청약통장은 여전히 내겐 그냥 이자 작은 통장일 뿐이었다. 내게 청약통장은 사용법이 잊힌 절대반지와 같다.




지금은 양평 어느 마을에서 월세로 생활하고 있다. 결혼 전부터 시골에서 살고 싶었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사해서 전학 다니지 않고 자기 고향으로 인식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앞뒤 안 가리고 '내가 원하는 삶이야'라고 내지르며 가족들 걱정 뒤로 하고 아이 학교를 고려해 이사를 강행했다.


이사를 하고 6개월이 넘은 어느 날 문득 내가 엄청난 결정을 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월세 50만 원, 하교 후 스쿨버스 이용시간 맞추기 위한 사교육비 20만 원, 도시가스가 없는 관계로 추가되는 난방비 20만 원, 남편이 출퇴근 시 구비구비 찾아드느라 추가되는 기름값 20만 원. 110만 원이 물처럼 흐르게 되었다고 시골살이에 필수품인 마이카를 장만해 운영한다면 더 많은 비용이 출혈된다는 것을 직면하게 되었다.


연고 하나 없는 양평에 집을 알아보기 전에 시흥에서 1억 정도 대출받아 마음에 드는 초등학교 앞에 아파트를 살까 고민했었다. 만약 그곳으로 이사했다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상환액이 있어야 했는데 지금 나가는 금액보다도 적다. 아파트는 이미 1억이 올랐으니 완전히 남는 장사였겠다 생각하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현타가 왔다.




여기가 어디고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여기 오고 싶었을까? 지금 나는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시골 살이의 일상은 꾀 괜찮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며 창문을 연다. 깨끗하고 상큼한 공기와 멀리 보이는 앞산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하루 종일 멀고 가까운 곳에서 닭소리, 새소리가 끊이지 않고 문밖에서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경쾌하다. 아이들과 노닥노닥 천천히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스쿨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마을 아래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나는 요가를 배우고 아이는 미술 수업을 받는다. 혁신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좋은 선생님 만나 친구들과 매일 북한강변을 산책한다. 스쿨버스 배차 문제로 뜻하지 않게 시작된 사교육이지만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서 경험한 피아노 소리에 감동받아 피아노 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놀이 수학도 배우며 한 층 논리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도 도시 살 때보다 두배 넓고 높고 밝아져 살기 쾌적하다. 


다만 이런 소소한 경험들이  1~2억이 넘는 가치라니 너무 비싸다. 반면 내가 선택한 가치들이 이렇게 고가의 가치임에도 하찮게 외면하고 지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아침마다 들이키는 새벽 공기가 더 달고 고급졌고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과 손잡고 등하교하는 길이 가슴 따뜻하게 나를 달궜다. 어쩌면 평생 가르치지 않았을 피아노를 아이에게 가르치면서 어린 시절 못 배운 한을 풀어며 만족을 경험한다.


만약 내가 광명 언저리 아파트 어느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면 1~2억 벌었다고 좋아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시골을 선택하지 못한 나를 탓하며 '언제 떠날 수 있을까!' 동경하는 삶 속에 현재를 갑갑하게 여기고 여전히 쪼들려했을 것 같기도 하다. 시골에서의 물 흐르는 지출을 예상할 길이 없으니 말이다.




만약 시간을 돌려 다시 선택하게 한다면 나는 청약통장을 없애지 않고 계속 분양에 도전할까? 그건 그렇다. 내가 시야가 좁고 게을렀다고 인정한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까지 7년의 시간이 있으니 시도했어야 했다.


만약 시간을 돌려 이사를 고려하던 때로 돌아간다면 시골을 선택하지 않고 아파트로 갔을까? 이건 잘 모르겠다. 아파트에서 1,2억 벌어서 전학 그까짓 거 한 번 시키고 더 나은 조건으로 시골에 올 수도 있겠지만 애들 출가시킬 때까지 용기 내지 못하고 영영 도시에서 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시골 살아봐야 공기 좋고 한적할 뿐이지 편의도, 복지도 불편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왜 여기 못 오게 될까 봐 걱정인지 내 마음이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말.


선택은 돌이킬 수 없다. 젊어서 시골을 선택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긴 했지만 투자할 가치는 있다. 아이들 정서에 간직될 심리적 풍요와 경험의 희소성 그리고 안정성. 지금 내가 누리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누리는 지금의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으로는 살 수 없을 매 순간 나를 채우는 맑은 공기와 자연의 소리들 그리고 마음의 여유는 나만 특별히 2억 주고 샀다. 용기 없이는 지불하기 힘든 비용이지만 나는 했다. 장하다.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시골로 이사하고 부동산으로 돈 벌 기회를 놓쳐 화가 났을 뿐이지 시골 살이를 선택한 그 자체를 후회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힘든 선택이었는데 내 뜻에 따라준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고마워서 내 눈에 하트가 날아다닌다. 여기 살아보니 문호리 학교 옆에서 살아야겠다는 후회 없을 계획도 세울 수 있었고 내 꿈을 이루는데 전학을 다니지 않아도 돼서 마음도 편안하다. 풍요로워진 정서를 바탕으로 더 가치 있는 내가 되어 돈도 많이 벌고 아이들도 부자 될 수 있게 잘 가르쳐서 우리에게 필요한 내 집하나 장만하면 결국은 손해 볼 일도 아니다.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지금 여기서 이대로 행복할 조건'이 모두 갖춰져 있는 시골에서의 생활이 좋다. 남 돈 번 이야기, 개발지역 열풍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발 붙인 이곳에서 나의 방식으로 비비고 비벼 튼튼하게 뿌리내리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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