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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왁킴 Sep 29. 2021

장날

9년 전, 나의 시



이메일을 뒤적이다,

9년 전에 내가 쓴 시를 발견했다.



눈물나도록 가슴아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짚은 모양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며

빡빡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고

옹기종기 둘러 앉아 과자를 튀기다가,

순식간에 기름이 튀어

모두가 화상을 입었다.



여린 손, 보드란 딸래미의 손에

몹쓸 흉을 만들었다며,

진물 나는 손으로 가슴을 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흉터는 모두 사라졌지만

우리 기억엔 또렷이 자국이 남아,

가끔 나오는 이야기에도

울컥 마음이 흔들리는데



스물 아홉의 나도

그 기억이 참 아팠는지

이렇게 글을 써두었네.



다행이다.




지금 읽어 살짝 아린 걸 보니,

그 사이,

3밀리쯤은 더께가 앉은 것 같다.





장날
 
 



1994년
어느 토요일의 저녁-
 


군것질을 참아야한다며
다 닳아진 지갑의 입을 묶던 어머니가
주둥이를 벌리고 앉은 새끼들의 머리맡에서
바싯바싯-
과자를 튀긴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에
가난한 눈을 한 엄마의 표정이 닿아
물에 불린 밀가루 반죽에 함께 말리면
뜨덕뜨덕-
허연 과자가 되어 쟁반에 놓인다
 


물기 가득한 반죽을 솥에 넣자
타닥타닥-
멀리까지 성난 듯 튀겨나간 기름이  
엄마의 손
언니의 팔
두 아이의 코앞에 떨어지고
 


벌겋게 데인 손을 안고도
우는 큰 아이의 팔에
찬물을 끼얹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보다 더한 열상(熱傷)으로
살갗을 잃은 지 오래다
 


뼈만 남은 가슴을 안고 어머니는  
그 날 온 종일을  
눈물로 보내셨다
 


반 아이 모두가
고무신을 신던 시절에도
새하얀 운동화를 신었다고 하셨다
혼자만 책가방을 메고
책을 싼 보자기를 뒤편에 감추는 아이들 사이를
새치름하게 걸었노라 하셨다
 


곱디 곱게 자란
창말집 둘째 아가씨는
볼딱지에 허연 버짐이 핀 세 아이를 끌어안고
기억으로 남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사진을 쓰담으며
근 십 년을 여전히 보내야 했다
 


1단지 앞에
흰 천막을 두른 소박한 장이 섰다
 


찬거리 좀 없나-
장돌뱅이처럼 이곳저곳을 집적이던 내 눈에
막연한 그리움을 담은
옛날과자가 와닿는다
 


때 묻은 난로가 곁에 있지만
아저씨의 입은 허연 입김을 거푸 내뱉는다
붉은 코팅이 닳아빠진 목장갑으로 쌀튀기를 봉지에 담는
벙거지 쓴 아저씨의 모습이
자꾸 고되게만 보이는 내게 ,
엄마가 슬쩍 팔짱을 껴온다
 


아직도 거뭇거뭇
그 날의 기름 자국이 남은 엄마의 손을
나는 가만가만 쓸어 담아
추억으로 어루만지니 ,
 


엄마의 눈은
밀가루 냄새나는
꽈배기의 매듭 끝에서
반짝
애잔히도 빛난다.
 
 
                    201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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