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평 아파트
엄마와 아빠는 잦은 별거를 했던 것 같고 무슨 이유에선지 다시 합쳤을 때는 갑자기 25평짜리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집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 초등학생 시절 가장 행복했던 때를 그 집에서 보냈기에 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나였는데 친구들 덕택에 빠르게 적응해서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매일 자전거를 타며 놀았던 기억. 세 명이 모여 다녔는데 둘만 먼저 그네에 타고 있으면 나는 항상 삐져서 달래주길 기다렸던 기억. 얼음땡을 하면서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입술이 찢어진 기억. 피가 많이 났는데 아물며 아랫입술 한쪽이 약간 부풀어 지금까지 입술라인이 고르지 못하다.
이 빼기 싫어서 흔들리는 이를 숨기고 있었는데 자전거 손잡이에 턱이 부딪혀서 빠진 일.
그 당시에는 생일초대를 반애들 다 불러서 하는 게 유행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집으로 우리 반 전체를 초대해 2/3는 참석해서 떠들썩하게 생일잔치도 열었던 일.
친한 친구들이 모두 눈높이 학습지를 했는데 선생님 오시는 날 엄마들과 같이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눈높이 수업을 받고 또다시 신나게 놀았던 일.
어쩌다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장이 되어서 지적장애를 가진 같은 반 친구를 여러 번 도와줬다가 그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 내 이름을 적은 게 창피해서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공중전화로 전화했던 일.
항상 머리를 이상하게 잘 묶어주던 엄마였는데 나는 꾸미는 것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내 같은 반 친구는 그런 나를 무척이나 의식했던 듯 내가 머리를 바꾸고 갈 때마다 한 마디 씩 하면서 어느 날은 자기 머리를 여러 갈래로 따서 온 것을 자랑하던 친구와의 일.
아람단에 들어가 언니들에게 이쁨 받으며 캠핑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장기자랑으로 패션쇼를 준비했던 기억. 나를 가을 대추라 불렀던 내가 좋아했던 남자아이와 티격태격했던 일.
부모님의 이혼으로 양육권을 뺏길까 두려웠던 엄마가 나를 데리고 급하게 도망치다시피 나왔던 동네의 아파트전경과 놀이터. 서울 집에서의 마지막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