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내가 참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아픔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며 지내던 해에
2018년도인가, 2019년도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책은 제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케테 콜비츠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죽어서도 천사 같은 아이, 그런 아이의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어머니는
짐승처럼 울부짖습니다.
1988년, 박완서 작가님이 앞날이 창창했던 의사 공부를 하고 있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비명과 통곡 대신 써내려갔다는
<한 말씀만 하소서>
같은 해에 남편을 보내고, 석달 뒤 서울대 의대 인턴이던 스물여섯 한창 아들을 잃은 박완서작가님
그런 엄마를 혼자 둘 수 없어 장녀는 부산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딸 앞에서 울지 못하고 수시로 북받치는 통곡을 신음하듯 글로 담아냅니다.
자식을 황망하게 보내고,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자식을 잃은 고통보다 자식을 보낸 어미가 멀정하게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눈을 뜨니 낯선 방이었다. 옆에서 손자가 곤히 자고 있었다. 꿈이었으면 하는 몽롱한 착각을 즐길 새도 없이 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서운 괴물처럼 가차없이 육박해왔다. 집에서 같으면 설마 꿈이겠지 하고 현실감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꽤 길었으련만.
행복했을 때는 아침이 좋았는데 요샌 정반대다. 내 앞에 펼쳐진 긴긴 하루를 살아낼 생각이
지겹도록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시때때로 탈진하도록 실컷 울면
그동안이라도 시간을 주름잡을 수가 있는데 그것도 용납 안 되는 하루 동안이란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가.
아쉬운건 그뿐이 아니었다.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다는걸 인정하게 되면 그 다음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몸을 솟구치면서 울부짖을 차례였다.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식인지 아무도 모른다. 목청껏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하면 소리와 함께 고통이 발산되면서 꼭 환장을 하거나 무당 같은 게 되어서 죽은 영혼과 교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한번도 실제로 그런 경지까지 도달한 적은 없다. 번번이 그 직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환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미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내 강철 같은 신경이 싫고 창피스럽다.
그러나 딸아, 그건 네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란다. 아무리 좋은 일도 그걸 못이 박힌 가슴으로 느껴야 할 때 어떠하다는 걸 네가 알리가 없지, 또 알아서도 안되고, 그러나 너도 손가락에 가시 같은게 박혀본 적은 아마 있을 것이다. 가시 박힌 손가락은 건드리지 않는 게 수잖니? 이물질이 닿기만 하면 통증이 더해지니까. 애미에게 너무 잘해주려고 애쓰지 말아라. 만약 손가락 끝에 가시라도 박힌 경험이 있다면 그 손가락으로는 아무리 좋은 거라도, 설사 아기의 보드라운 뺨이라도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만져볼 수 없다는 걸 알 테지. 그런 손가락은 안다치려고 할수록 더욱 걸치적 거린다는 것도. 못박힌 가슴도 마찬가지란다. 오오, 제발 무관심해다오. 스스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이해인 수녀가 찾아왔을 때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아들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목놓아 울었다. 이해인 수녀는 세 권의 책을 선물하였다.
<샘> <종교 박람회> <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였다.
도대체 신은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주실까?
왜 하필 우리 아들이냐고 묻고 또 묻는 기도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수녀가 된 딸이 지병으로 앓는 것을 지켜보며 고통스럽다고 토로하는 옆방 엄마에게
'나는 자식을 잃었다'는 말 한 마디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고통은 고통의 손을 맞잡아주고 큰 고통은 작은 고통을 덮는다.
고통을 당한 사람이 고통당한 자를 위로할 수 있다.
어느 날 기도 시간도 빼먹고 소화 테레사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 중에
식당에서 구수한 밥 냄새와 된장국 냄새에 정신이 팔렸다.
보통 식당은 기도를 하고 난 뒤 반대쪽 문으로 나가서 식사를 하게 되어 있는데
그날은 기도를 빼먹고 그 냄새에 정신이 팔려서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된장국이 아니라 비빔밥이었다. 꼬르륵 소리와 식욕을 느꼈다.
그동안 식사량이 적어서 걱정하시던 수녀님 앞이라 자제하며 먹었디만
기막히게 맛있었다. 비빔밥을 맛나게 먹고 돌아오는 자신이 미워서 자문했다.
'너는 이제 살고 싶으냐?'
그날 이후로 끼니때만 되면 배가 고팠으니 자식 집을 나와서 수녀원에 들어온 것은
죽기 위함이 아니라 살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원망으로 똘똘 뭉쳤던 마음에
'왜 당신이라고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가?'라는 반문은 딱딱한 마음에 균열을 일으켰다.
서울로 돌아와서 중단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과 자식을 보냈던 잔인한 1988년도를 삼키고 소화시키고 살아냈다.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더 한 슬픔과 고통이 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생살을 도려내는 슬픔, 내 자신이 살해당하는 슬픔,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고 지옥 속에서 헤매이는 고통...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억장이 무너지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
다시 되돌리고 싶은 무언가다.
그리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 나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보통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식은, 돈보다,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다.
자식만 바라보고 힘을 내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다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은 없을 것이다.
남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앞날에 의사가 될 창창한 아들을 잃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죽고 싶은 만큼의 아픔이었을까.
그 아픔을 이겨내고,
통곡과 고통을 가슴에 삼키고, 다른 영혼을 치유하는 작가로 그녀는 거듭났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작가님도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 아들과 함께 살아오셨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치유자가 되어 돌아왔다.
결국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도 사람이고 사랑이다.
사람은 모두 다 다르지만
가장 강도가 높은 아픔은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아픔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