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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징 거린다는 건 자기의 약함이나 감정의 표출이다.
내 마음이 지옥일 만큼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상처는 고름과 같다. 감정토로는 고름을 빼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토로만 해도 감정의 압이 떨어진다.
고름이 오래된다고 살이 되지 않는다. 고름을 빼내야 정상적인 세포가 복원되기 시작한다.
징징거림은 남들 보기엔 엄살이지만 내게는 압력이 꽉 찬 압력밥솥의 압력추를 젖히는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편파성이 긴요할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의 꼭 한 사람이 되어줄 때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너'라는 이유만으로 "내 말이 그 말이야" 맞장구 쳐주고
함께 펑펑 울어주는 편파적인 사람이 바로 '꼭 한 사람'이다.
- 내가 이렇게까지 나쁜 인간인가. 정상이 아니야. 인간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는구나 한탄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내가 그 감정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증오의 감정에 휩싸이는 때가 있다.
그 감정의 실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무서워지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아 갈등이 극에 달한다.
증오는 순식간에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감정인 동시에 가장 처리가 까다로운 감정이다.
이런 때 지옥을 탈출하는 핵심은 생각과 행동은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무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모든 생각은 무죄다.
그 지랄 맞은 부장이 암에 걸려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잘 드는 칼이 있다면 내 몸을 더듬던
그 손을 싹둑 썰어버리고 싶어.
그러다가 화들짝 놀랄 필요 없다. 단지 어떤 생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를 힐책하거나
이중적이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죽이고 싶다는 말은 죽이겠다는 마음의 표출이 아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지금 내 마음이
지옥이라는 거다. 증오 감정을 마음껏 토로하고 공감 받으면 증오 생각은 눈녹듯 사라진다.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무죄다.
- 멀쩡하게 밝은 데 서 있다가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 인생은 왜 맨날 이렇게 깜깜한지 몰라'한숨 짓는다.
본인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조차 못한다.
자기 집 안방에 스스로 지뢰를 묻어놓고는 하루하루가 불안하다면서
사람들에게 빨리 와서 저걸 좀 치워달라고 호소하는 식이다.
반응이 미지근하면 기구한 팔자 타령을 하면서 세상에 대해 분노한다.
'신이시여, 왜 제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가 단골 멘트가 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신이 주지 않았다. 본인이 자기 안방에 스스로 지뢰를 묻은 거다.
안 묻으면 된다. 괜히 밝은 데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한탄할 거 없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유홍준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
평생 누구에게 발톱을
내밀어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단 한 번도 발톱을 깎아주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화살> 이시영
새끼 새 한 마리가 우듬지 끝에서 재주를 넘다가
그만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먼 길을 가던 엄마 새가 온 하늘을 가르며
쏜살같이 급강하한다.
세계가 적요하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 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이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야
- 나는 원래 스스로 걸었던 사람이다.
나는 본래 절대적으로 괜찮은 존재
살다 보면 어깨 위에 산 전체를 걸며지는 고통을 벼락처럼 마주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믿었던 관계가 깨지고
곤두박질하듯 무일푼 신세가 된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힘에 겨워 무릎이 꺾여 넘어진다.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같다.
일어나는 방법을 잊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다시 일어나고 어떻게 걸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살고 싶어서다.
트라우마 현장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치유자 정혜신의 처방은
간명하다. 걱정할 거 없다.
지금 일어설 수 없으면 일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
꺾였을 때는 더 걸으면 안 될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걸 인정해줘야 한다.
충분히 쉬고 나면 저절로 걷게 된다.
당신은 원래 스스로의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 자기 속도로 가는 모든 것은 옳다.
관계를 끊어야만 해결되는 문제라면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정확한 리액션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가장 정확하게 반응한다는
리액션의 달인 유재석의 용감한 버전 쯤이 정답이다.
그러다 관계가 다 끊어지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없다.
그런 관계라면 없어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거나
외려 삶의 질이 나아진다.
새로운 관계는 계속 생긴다. 식수가 없어서 구정물을 마신다고 살아지나.
제대로 된 식수를 구하기 전에 병에 걸려 죽는다.
민달팽이는 이 잎사귀에서 저 잎사귀로 옮겨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런다고 문제 있나. 없다.
문제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우리 생각만 문제다.
치타든 달팽이든 자기 속도로 가는 모든 것들은 옳다.
왜 치타가 아니고 달팽이냐고 눈을 치켜 뜨는 족속들만 틀렸다.
모든 불편함은 틀린 이들이 감당할 문제다.
그리고 반사
'마이 비즈니스'가 아니고 '유어 비즈니스'다.
-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책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