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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라작가 Jan 28. 2024

아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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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연기 공부를 시작했어요.

아이 연기공부하는데 데려다주러

강남에 와 있어요.

매주 일요일마다 2시간씩 오전에 한답니다.

아이가 연기공부하는 동안,

저는 카페에서 글을 써요.


태어날 때부터 태교로 방송을 하고,

1살 때부터 제가 하는 방송에 출연하고,

매주 제가 만드는 방송을 모니터하면서 자란 아이.


5살 때, 제가 만든 방송을 다 보겠다며

졸린 눈을 부릅뜨며, 1시간 짜리 방송을 매일 봐주던 아이.


아이를 키우며,

참 많이 울고 웃었는데요.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와 함께 오래 있어주고 싶었어요.

좋은 것 좋은 추억도 많이 쌓고 싶었고요.

그러나, 경제적인 책임과 육아를 동시에 져야 하는 것은

쉽지 않았죠.

그래도, 저는 방송작가로 프리랜서 경력이 있었던 터라,

지인들을 통해 계속 방송일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아이를 낳고나서는 재택으로 돌려서

일을 할 수가 있었죠.

재택으로 돌리면서는, 더 빡세게 일했어요.

글을 더 많이 써야했거든요.

그래도, 아이를 챙겨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다른 일들에 비해 원고료도 높았으니까요.


제 다리를 붙잡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놓으며,

돈을 벌러 버스를 타고 방송사로 출근해야 했을 때를 기억해요.

그 때 버스 안에서 얼마나 아이가 보고싶던지

저도 막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출연자 취재를 하다가도, 얘기를 들으며

막 울었었어요.

그때, 김장훈씨 어머니께서 제 우는 모습을 보시더니

촬영을 허락해주셨었죠.

아이를 위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했기에

아이를 낳고 더 열심히 일했어요.

육아도 더 열심히 했습니다.

전쟁같았어요.

전쟁터처럼 치열했죠.

검은 머리가 안 날 정도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아이를 지킬 수 있다는 것 하나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어느 날, 저는 일하는 엄마 때문에

혼자서 친구들과 함께 커야 했는데,

아이를 낳고도, 아이랑 떨어져서 일을 해야 하는 점이

너무 마음이 힘들었어요.

그 때가 아이 7살 때,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힘들어할 때였어요.

아이가 힘들어하면,

부모는 다 제 탓처럼 느껴지잖아요.


꾸역꾸역 전쟁터처럼

일과 육아를 치열하게 병행하다

돈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아이를 위해, 잠시만 제 꿈을 접기로 했었어요.

아이가 평온 행복해질 날까지요.

그래도 일은 계속해왔죠.

과거처럼 치열하게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몸도 안 따라줬으니까요


저에게 힘들었지만, 선물같았던 아이.

아이로 인해,

저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활동적이라 야구장에 가면

치어리더 옆에서 춤을 추고는 했었는데요.

초4때부터는 친한 친구들과 춤 연습을 해서

해마다 무대에 올랐던 것 같네요.


저희 아이가 어릴 때부터 춤, 공연을 좋아해서

오디션도 여러 번 합격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욕심도 많고,

이것저것 다 배우고 싶어하고

열심히 하고, 활동적인 아이라,

챙겨줘야 할 부분도 정말 많았어요.


8살 때부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슬라임 만들기를 좋아해서

종류별로 슬라임 만들기를 하는 것을

촬영,편집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컴맹에 기계치라 가르쳐주지는 못하고,

주위 언니들과 얘기하면서

스스로 독학으로 배워 하더라고요.


초등학교 생활 동안은

인성공부나 친구 관계, 마음 공부에

최대한 많은 신경을 썼어요.


8살 때부터 살이 빠지면서

얼굴이 점점 예뻐져서 불안하기도 했고,

저도 일을 좋아해서, 제 일을 해야 하니까

계속 못하게 누르고, 막았는데요.


그런데, 올해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못하게 했더니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올해는 두 손 두 발 들었습니다.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일이니까

지원 응원해주기로 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싶네요.


작은 오디션에 합격해서

연기공부를 합니다.

조금씩 뮤지컬이나 성가대 활동은 한 적은 있어도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은 없어요.

그보다, 제가 연극을 했었으니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주고,

가르쳐주고 있어요.


나중에 저와 함께 이쪽 일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연기자나 가수를 해도 좋고,

아나운서를 하면 좋겠다 생각하고는 있는데,

경험삼아 하고,

혹 작가나 피디를 하더라도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저와 함께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

생각해요.

그러면, 저와 함께 오래 같이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아이가 마음 다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 평안했으면 좋겠다 바래요.


우리 아이가 힘들어할 일은,

제가 대신 해주고 싶은 마음.


이 아이는 평안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마, 이게 부모 마음이겠죠?


우리 어머니께서 저 고생 안 시키시려고

본인이 대신 고생을 하면서도,

저는 행복하길 바랬던 것처럼요.


부모님을 보고,

자식 뒷바라지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저는, 그동안 방송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왔었고,

남들이 말하는 엘리트길을 걸으며 흔히 성공했다 들었었죠.

저를 위해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 효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길에서, 다른 무언가들을 깨닫고 느끼고 있어요.

제가 깨닫지 못했으면 안 됐을 무언가들을요.

아버지의 고마움을 느끼고,

내 자식을 보며, 안타까움과 행복을 느끼고,


나의 부족함을 느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어떻게 응원하고 도와줘야 할까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제가 갖고 싶은 것,

간절히 바라던 것,

만나고 싶은 것은

아마, 뒤늦게 찾은지도 몰라요.


제가 그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천천히 멈춘 시점에서

보게 되는 것들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되며

인생, 삶, 사람, 사랑에 대해

느끼고 알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십 대랑 다르게

삼십 대, 마흔에 접어드는 마음은

많이 다르네요.


어제 친척동생 결혼식날 마치 엄마가 결혼식하는 것처럼

모처럼 행복해보이는 모습을 보니까

우리 엄마가 우리집에 시집와서

참 고생만 하고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 챙긴다고, 힘들면 엄마에게 부탁하며

우리 엄마를 힘들게 고생만 시킨 거 아닌가

엄마를 위해 그렇게 하는 거라 해놓고,

엄마를 편하게 못 해줬네.

내 사람이라 생각한 다른 사람에게 다 퍼주면서

엄마에게는, 매주 잘한다고 잘해왔지만,

엄마에게 정말 착하고 예쁜 딸이었지만,

내가 힘들고 아프다고,

엄마를 아프게 한 건 아닌가.


어제는 아버지께서 할머니께서 일찍 아파

엄마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자신이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리고, 그 날 밤 엄마 손을 꼭 잡고 주무시는데

저희 엄마는, 스킨쉽 대화를 별로 안 좋아하세요.

굉장히 무뚝뚝한데,

엄마는 손을 치우라고 하시고...

저는 엄마가 그렇게 시니컬한 게 싫었는데,

저렇게 투닥투닥거리는 모습도,

나중에 돌아가시면,

얼마나 그리울까 싶어요.

저에게는 부모님이 다 거든요.


저희 엄마, 아빠는 20대 초반에 만나

70세가 다 되도록

50년 가까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도 헤어질 수 있었던 일들이 있었지만,

엄마는 저를

아빠를 저를 아주 많이 사랑하셔서

저라는 끈 때문에 살고 계신 것 같아요.

아빠가 엄마에게 잘못하면

제가 아빠에게 응징을 하고

엄마가 아빠에게 잘못하면

제가 엄마에게 응징을 하거든요.


아빠는 아빠 인생, 엄마는 엄마 인생

나는 내 인생이라 생각하고,

내 인생을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꾸려왔지만,

결국, 엄마 아빠 딸이더라고요.


어제 아버지께서, 자식 하나 밖에 안 낳아서 미안하다며

저만 하나 낳아 잘 키우겠다며, 수술을 하셨거든요.

아들을 너무 낳고 싶어했던 엄마는, 그 일로 아빠를 미워하셨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독립적이라서

대학교도 일도 제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졌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저 혼자 도저히 감당이 안 됐어요.

덕분에... 엄마 아빠 정신적 물리적 지원을 많이 받았죠.

아빠가 어제 그러시더라고요.

하나만 낳으면, 재산 때문에 싸우지 않아도 되지 않냐고.

근데, 아빠는 돈 없이도 법 없이도 사시잖아요. 다 퍼주고 사시는 분이.

그리고, 아빠 나는 지금까지 부모님 도움 없이 혼자 일궈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지금처럼 아빠가 정신적으로 응원, 지지만 해줘도 정말 큰 힘이 되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자수성가로 부잣집 아들이셨지만

어릴 때 사고로 곱추가 되신 큰아빠를 생각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 무렵부터는

사업을 하며 11식구를 먹여살렸고,

집안의 많은 돈도, 형님에게 양보했어요.

아마, 형이 곱추라 돈을 벌기 어렵다고 생각하셔서 그렇게 양보하셨나봐요.

친구에게도 보증을 잘못 서 줘서 집 한 채 주고도, 먹을 걸 사 들고 가시던 분이에요.

제가 볼 때는, 흥부와 놀부 같았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흥부요.

그래서, 엄마는 남들에게 친절하지 말라고

남은 남이라고, 그렇게 아빠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이웃 사랑, 형제 사랑은 멈추지 못했죠.


저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엄마를 위해서 살다,

나중에는 엄마에게도 독립해서 제 인생을 꾸린다고 꾸렸는데...

부모님보다 제 옆 사람들, 제 아이를 더 위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어느 새 사느냐 바빠 정신없이 일만 하며 살다가

늙어있는 부모님을 보니,

더 잘 해드리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리고 죄송해요.

그렇게 잘한다고 했는데도...

한 번 못 한 게 너무 후회가 돼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제가 희생하는 성격이라,

때로 부모님께 불효녀기도 했을 거에요.


그런 건, 우리 엄마를 닮았죠.

엄마도, 아빠와 저를 위해 헌신하느냐고

외할머니께는 불효녀였거든요.

대신, 외삼촌 외숙모들이 효자 효녀라

외할머니는 사랑을 듬뿍 받고 가셨죠.

엄마의 지극정성인 사랑 덕분에

누군가를 위해 헌신 희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아요.


누구나,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이 몰라준다고 해도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하고 기다리고,

그렇게 사랑과 의리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생각해요.


엄마가 미울 때도 있고

엄마가 좋을 때도 있고

아빠가 미울 때도 있었고

아빠가 고마울 때도 있지만,


옛 어르신들은, 의리는 끝까지 지켰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 엄마, 아빠라는 점.

저는 어머니의 의리와 헌신,

아빠의 정, 사랑, 의리를 물려받았다는 것.


저에게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악바리같은 엄마의 모습도 있고,

가족을 너무 사랑해서, 아프고 희생한

아빠의 모습도 있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깨달아 갑니다.


그리고, 힘들어도, 의리를 지키면서 살아야겠다

다시 한 번 결심해봐요.


우리 엄마, 아빠를 닮은 나.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를 닮은 그 사람.

마치 우리 엄마 아빠를 보는 것 같은 그 사람의 부모님.


어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나이.

마흔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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