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
중, 고등학교 때 읽은 책인가? 자기 앞의 생.
나는 초,중,고,대학교 때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카뮈, 카프카, 괴테, 헤밍웨이
베르베르, 에쿠니가오리,
한국 작가로는 이상, 이문열작가님, 이외수작가님, 공지영작가님(은희경, 신경숙) 박완서작가님, 조정래작가님 (최근 박경리작가님)을 좋아해서
한 작가를 좋아하면, 그 분들의 작품을 모조리 눈 떠서부터 잠들 때까지 매일 읽고는 했다.
그런데, 내가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책이 있는데
바로 자기 앞의 생이다.
에밀 아자르는 1980년 의문의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와
동일 인물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 강한 윤리 의식, 풍자 정신으로 채색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책 서두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쳐버린 거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의 참맛은 그런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걸"
이 책은 지상의 가장 어두운 곳이라 할 수 있는
빈민굴을 배경으로
사랑의 소중함을 담고 있는 휴먼 드라마다.
밤거리의 여인들이 버린 아이를 맡아 기르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감수성 예민한 아랍 소년 모모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명제를 들려주는 아밀 할아버지,
의사 카츠,
자움 형제 등
사랑으로 승화되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작품 속 주인공 열네 살의 모모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우울하고 어두운 환경 속에 살면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분리시킨다.
세상 속의 혼탁함에 섞이지 않는 순수한 영혼
세상에서는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영혼으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비판한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어린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성인이기를 거부하며 세상의 나이 또한 거부하고 싶어한다.
모순투성이의 세상에 속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고 세상 속의 인간이기를 부정한 채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말을 단지 글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모는 세 살 때부터 로자 아줌마와 산다.
로자 아줌마가 모모를 돌봐주는 이유는
단순히 매달 말에 받고 있는 수표 때문이다.
그 사실을 여섯인가 일곱살 때 알게 된 모모는
밤새도록 운다.
생애 최초 슬픔이라고 말한다.
그런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는
사실상 가족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고,
해마다 3천 마리나 되는 개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며
모모를 이해시킨다.
그러면서 아줌마는 모모를 무릎에 앉히고
세상에서 모모가 가장 소중하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모모는 송금 수표를 떠올리고, 울면서 뛰쳐나간다.
그렇게 뛰어나가 만난 하밀 할아버지에게
모모는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렇다는 말에 모모는 또 운다.
로자아줌마는 몸을 파는 여자들은 정신적인 지주가 없는데
그것은 포주들이 마구 일을 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여자들은 삶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 자신의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한다.
모모는 경찰에 등록된 창녀들이 왜 아이들을 기를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창녀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들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다고 경찰에 고발했다는 이유로
겁먹은 여자들을 로자아줌마가 안심시켰다고 한다.
모모는 경찰관을 꿈꾼다.
경찰관이란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도 경찰관을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자신에게 위대한 시인 같은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다고 하자,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에게
"너는 정말 감수성이 예민한 애로구나.
그래서 네가 딴 애들하고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구나"라고 말한다.
모모의 순수함이 빛을 발하는 문장이 있다.
몸을 팔며 사는 여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문장이다.
왜냐하면 그런 여자들에게 손님들은 자주 바뀌는 것이지만
아이는 그녀들에게 미래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아이들은 로자 아줌마에게 초인종을 누르는 장난을 치고
아줌마는 창녀의 아이들이라며 마구 욕을 해댔다.
로자아줌마는 의사선생님과 대화 중에
"저 아이를 누가 뺏어갈까봐 두렵다"는 말을 한다.
"품행이 나쁜 여자들은 부양권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자기 애들을 교육시킬 권리가 없지요"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뒤에는 모모와 로자아줌마의 삶을 담담히 그려낸다.
로자 아줌마가 모모에게 주는 사랑
모모가 로자 아줌마에게 주는 사랑을 볼 수 있다.
나는 모모가 로자 아줌마가 죽은 후에
시체 옆에서 몇 주를 보내는 모습으로 이야기의 끝맺는 것을
인상깊게 생각한다.
결국, 주인공 모모는 자기의 남은 생을 그리며
사랑해야 한다고 끝을 맺는다.
작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각이
밤거리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이들을 맡아 돌봐주는
로자아줌마라는 한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녀를 어떻게 따뜻하게 안아주는지,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도 유명한데,
무명 연극배우 니나 카체브의 사생아로 태어나
유태인의 인종차별을 피해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지로 이주하고
13세 때 부터 프랑스 니스에 정착해 성장해
1934년 파리 법과대학에 입학, 법학을 전공했으며
이듬해 1935년 프랑스로 귀화한다.
1935년 그랭구아르에 당선되며 문단 데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대위로 참전.
종전 후 공적을 인정받아 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전쟁 중에 로맹가리라는 이름으로 <유럽의 교육>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다.
30세 때 <보그>편집장이었던 레슬리 블랜치와 결혼
1945년부터 프랑스 외무부에서 대사 서기관으로 근무,
이후 프랑스 외교관으로 불가리아, 스위스,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
체류하며 작품 활동 병행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 수상.
<천국의 뿌리>의 각색에 참여하면서 할리우드 입문.
미국 여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 레슬리 블랜치와 이혼.
외교관직을 사직
1963년, 49세 나이에 진 세버그와 재혼해 아들을 낳는다.
그 후 꾸준히 작가로 작품을 발표해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
자신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부터 어린시절 경험을 그려낸
자전적 소설을 썼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미국에서 최우수 단편상 수상
급진적인 흑인인권운동에 참여한 진 세버그가
FBI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으며 로맹 가리와 갈등을 빚었고
1968년 이혼.
이때 경험으로 <흰 개>를 발표
하지만, 당시 임신 중이던 진 세버그의 아이를 두고
과격파 흑인민권운동단체인 블랜팬서 지도자의 아이라는
언론의 악의적 루머가 퍼졌고
충격을 받은 진 세버그의 자살 시도로
딸 니나 하르트 가리가 태어나자마자 2일 만에 사망.
로맹 가리는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감독하여
<킬>에서 진 세버그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재기를 도와주고자 했으나,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로맹 가리는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고루한 노년의 작가로 평단의 외면을 받게 된
로맹가리는 그 후, 샤탄보가트, 에밀 아자르의 가명으로.
작품 출시.
<자기 앞의 생>은 그 해 공쿠르상을 수상했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4편 소설을 출간해
천재 작가라는 칭호를 얻는다.
그러나, 로맹가리로서는... 여전히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론가들의 극심한 비평을 받아
심적 고통을 많이 받았다고 혼다.
또한, 조카인 폴 파블로비치가 에밀 아자르를 연기했는데,
로맹 가리가 여인의 빛과 영혼의 짐을 발표하자,
비평가들은 "조카 에밀 아자르를 표절하려 든다"며 혹평했다.
진짜 아자르의 정체를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이 점은 지금까지도 많은 점을 시사하게 한다.
로맹 가리의 인생 자체가,
비평가들의 삐뚫어진 편견 자체가
한 명의 작가를,
천재작가라고 칭송하고,
혹평을 하고...
똑같은 작가인데 말이다.
로맹 가리의 삶을 보면,
진짜 작가의 내면을 알지 못하는
평론가들의 시선과 편견,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은지...
보여지지 않는가?
한편 우울증과 알콜 중독에 빠져 실종되었던 진 세버그가
1979년 9월 8일 파리 근교에서 자살한 채 발견
사인은 약물중독이었으나
로맹 가리는 FBI의 개입을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연>을 출간하지만, 문단에서는 로맹가리의 소설에
관심갖지 않았고,
1980년 12월 2일 로맹 가리는 파리의 자택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사후에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로맹 가리는 편견과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익명성을 선택함으로써 프랑스 문학계를 넘어 전 세계에 큰 파문을
남기고 떠났다.
<자기 앞의 생>은 정신병자로 낙인찍혀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던
작가의 정신적, 심리적인 갈등과 비로소 평화와 희망에 이르는 과정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당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 때문에
한 명의 천재작가가 죽은 것이 너무 안타깝다.
당대의 사람들은 로맹가리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시각으로
그 시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