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역할
대학교 때 페미니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혐오, 남성혐오로 인해
성별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여자라기 보다는,
그냥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살아온 사람이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일상 생활 속에서
여성이 겪는 불합리한 차별, 독박 육아, 가사, 맞벌이 병행 등을
온 몸으로 겪은 사람이지만,
그 힘든 걸 견딜 만큼,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은 것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방송작가일, 육아를 하면서
힘은 들었지만
여자로 태어나 엄마가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사실, 돈이 있거나, 여유만 있다면
나는 아이와 함께 여행이나 다니면서
즐기면서 살아도 괜찮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결혼할 때, 본 건 딱 하나였었다.
"내가 방송작가생활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나는 다른 건 보지 않고, 그거 하나만 봤다.
거기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작가가 가진 신념, 가치관과 맞아야 하며,
가부장제도 속으로 진입시키지 말아야 하며,
바람, 폭력으로 정신적 고통을 주면 더욱 더 안 된다.
작가 생활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시각, 남녀 평등,
작가의 영혼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하는
정서적 탄탄함과 내면의 강인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벗어난다면, 아웃이다.
경제적으로 둘이 똑같이 나눠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일을 쉬지 않고 해왔고,
없이 시작해서 부모 도움 없이, 둘이 힘 모아 집장만도 해봤고,
방송사에서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성별 차별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
존중 받으며 일을 해온 터로,
나는 내 직업이 힘은 들지만,
일을 하는 게 정말 좋았다.
다른 여성들에 비해
나는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것이나,
육아를 하는 게
조금 더 나은 환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출산했을 때, 메인작가를 했기 때문에
재택근무로 돌려서
아이 젖을 먹이면서 원고를 썼고,
친정엄마가 간호사 출신에,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산후조리원에서 담담자로 근무 중이셨기 때문에
육아며 살림 등
누구보다, 아이 키우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아빠는 나보다 더 섬세한 감성을 갖은 남자로,
괴테만큼이나 글을 잘 쓰시고,
엄마가 출근하면 설거지하고 집안일을 하시는 분이라.
내가 어릴 때, 엄마 대신에 학교에 와서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신 분으로
애기가 잘 때까지 1시간씩 안고 재울 정도로
온화하신 분이라... 정서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넌 혼자서도 일하고 육아하고 잘하잖아"라고 들었다.
혼자서 잘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일하고, 양육할 수 있는 환경으로
온 가족들이 내 의견을 들어주고, 맞춰주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일을 할 수 있었고,
아이 양육을 하고 봉사를 하며
쉼이 주는 행복함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많이 힘들었지만,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집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어딘가 섞이고,
뒤바뀐 느낌도 드는
그런 집에서 자란 터라.
나는 남녀의 역할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르게 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주위에는
결혼 후에도 육아를 하면서
남녀의 역할에 구분이 없이 자기 일에 열심히인 여자친구들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에 서로 힘내라고 해주면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건강한 페미니즘은
남녀 역할을 두고 싸우고, 서로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을 존중해주고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며
여성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직업을 갖고 일하는데 차별받지 않음,
또, 결혼 시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주지 않음
남성에게만 돈을 벌어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정 경제를 책임지며
똑같이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힘든 짐을 나누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건강한 페미니즘이다.
그런데,
이런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도 없이
잘못된 생각으로
여성을 혐오하고
남성을 혐오하는 일이 많은데
이는 굉장히 잘못된 시각이다.
일단, 사회적으로 두 남녀가 결혼해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뒷받침되어야할 제도가 많이 필요하다.
직장생활에서부터
부모가 일을 할 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까지.
20~30 세대가 자랄 때는
아동에 대한 인권 보호가 제대로 이루워지지 않은 게 사실이다.
6.25 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남녀 모두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기 바빴고,
집에 홀로 남은 아이들은
부모가 올 때마다 마을로 뛰어나가
모여서 놀기 바빴다.
그리고, 그 때는 아이를 교육시킨다고
아이를 때리는 걸 훈육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방치 뿐만 아니라, 아이를 때리는 것 모두가
아이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소중한 아이에게 폭언을 하지 않아야 하고,
훈육이라는 거짓말로 폭력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토록 한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한 가정이, 온 동네가, 한 사회가
모두 애써서 힘을 써야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을 정도인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현실적으로 얼마나 양육을 해주고 있나?
직장 생활은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때로는 야근으로 바빠
아이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기도 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평범한 대한민국 부모가 직장을 다니면서 맞벌이를 하고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돈이 많건, 적건, 직장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육아 자체는 쉽지 않은 것이다.
건강한 페미니즘은
남자에게도 육아로 초대한다.
남자에게 아빠로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돈 버는 기계인 줄 알고 살았던 아빠들이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스펙트럼이 넓어짐을 느끼고
아빠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건강한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일할 수 있는 행복함
아이를 양육하며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 아이들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녀 간에 성별로 싸우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직장, 양육환경을 들여다 보고,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게 건강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