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기억이 나요
제가 처음 방송사로 프리뷰 아르바이트를 갔었을 때가...대학교 3~4학년쯤 됐을 거에요.
처음 프리뷰를 하는 거라 잘하지 못했는데도
작가 언니를 잘 만나서 언니가 여의도 공원에서 kbs방송 녹화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 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분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군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인간극장 프리뷰를 하기 위해서 40분 짜리 촬영테이프 20개를 밤새워 했던 기억이 나네요
Ebs 맞수 막내 작가 시절 매주 촬영 테이프 100개씩 작가 언니랑 둘이서 프리뷰를 했으니까 그 정도는 이제 식은 죽 먹기더라고요
처음에는 촬영 테이프 1개 프리뷰 하는데도 하루종일 걸려서 낑낑 댔었는데... 어느 순간 오전 9시 30분부터 새벽 4시까지 점심 저녁 때 밥 먹고 쭉 앉아서 10개씩 프리뷰 했던 제 모습이 기억나네요. 그 때 제 나이 23살.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였습니다 4학년 2학기 시작되던 무렵에 취업이 되어서 그 날로 학교도 안 가고 교수님들에게 양해 구하고... 아침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하며...졸업시험을 보고...졸업 논문을 썼던 기억이 나네요. 영어성적도 졸업 통과 성적에 맞춰서 다 통과했네요 그 때 절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따뜻한 말을 건내준 교수님, 선배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
저는 제가 다닌 광운대 국문학과 조영복교수님 국문과 선배들이 정말 좋습니다 인성이 정말 좋거든요 힘들 때 선배 후배들에게 참 좋은 기운 많이 받았어요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남주들 못지 않은 선후배들 많답니다
그렇게 잘생기고 성격 좋은 선후배들을 뒤로 하고
제 마음을 오랫동안 사로잡은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제 첫사랑이죠.
첫사랑이 없었다면... 제가 작가로 수많은 원고를 쓸 수 있었을까요.
제가 전국글짓기대회에서 1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쩜 그 사람 덕분이고...
작가 생활이 그렇게 힘든 데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사람의 응원과 지지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막내작가시절...너무 혹독하게 일을 하는 바람에...2박 3일동안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프리뷰 100개를 끝내야했어요 프리뷰어 2명과요. 그런데 그 중 한 프리뷰어가 하루에 프리뷰 1개를 하는 거에요. 정말 답답했습니다.
원래 제 성격이 몰아치는 성격이 절대 아닌데...
하도 답답하고 어이가 없어서 첫 날 다 집에 보냈어요. 그런데 어김없이 전화가 옵니다 서브 작가의 불호령이 떨어졌죠.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데... 그 땐 왜 그렇게 바보처럼 착하기만 했는지. 언니가 하겠다는 걸 또 오기로 다 끝내놓겠다며 집으로 보냈네요 내가 왜 그랬을까. 솔직하게 프리뷰어들이 일이 너무 느리고.. 일주일을 걸려야 하는 걸 2박3일 동안 100개를 끝내는 건 무리다. 같이 하자고 왜 그 땐 그런 말을 못했을까요.
결국 그 밤에 다시 여의도로 끌려가서 2박 3일 동안 프리뷰 100개를 끝냅니다 제가 거의 다 했던 것 같네요 제가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해서 또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그 독기로 제 시간에 다 끝내버렸네요 서브 언니가 아무 말 못하게요.
그리고...결국 탈이 났습니다
식은 땀이 흐르는 몸을 이끌고 여의도까지 또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네요 제 얼굴을 보자마자 언니들이 병원을 보냅니다. 결국 맹장이 터져서 맹장수술을 했어요. 감기로 이비인후과만 가보았지. 엄마가 간호사 출신이시라...생전 병원 문 턱에 갈 일이 없던 저는... 또 몸에 칼 댄 적 한 번도 없다며 절대 칼 대지 않겠다며 맹장수술 안 하면 죽는다는데도 버팅겼네요. 그 때 저는 왜 그랬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참 쓸데없이 생각 주관만 뚜렷하고 고지식했던 제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다행히 의사선생님들이 티 안 나게 수술을 해주셨어요. 저는 맹장수술하면 배를 크게 가르는 줄 알았는데, 다른 절개법이 있더군요. 그 와중에도 정말 다행이다 했어요.
그 때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제일 먼저 달려와서 녹색 가디건을 벗어주고 간 사람이 제 첫사랑이에요. 아프니까 더 예뻐보인다고... 몇 시간을 제 옆에 있다가 가주었는데...
사람이 아플 때 제일 서럽잖아요.
특히나 저는 아파도 제 할 일 다 하고 꾹꾹 잘 참는 성격인데... 그 사람은 제가 드러내지 않고 싶어하는 이면의 저를 보아주었어요.
넌 힘들어도 힘들다고 얘기를 안 한다고...
왜 그런 얘기들을 안 하냐고 속상해하면서도
제가 말하지 않아도 제가 전화기에 대고
눈물만 뚝뚝 흘려도...
제가 우는 줄 알고 달래주던 그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제가 말하지 않아도...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주고 제 마음을 더 잘 알아주던
그런 사람을 평생 한 번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축복인 것 같아요.
제가 그 뒤에 방송작가를 계속 할지. 최종 기자시험에 합격하고 작가 길 가겠다고 못하겠다고 했을 때도... 말 한 마디로 절 살려놓았죠.
밤새서 프리뷰 아르바이트를 하고 20만 원 벌었다니까 고소득자라고 위로해주고
제가 제일 힘들어할 때도
버티란 말로...
심지어 저희 어머니 걱정까지 해주었죠.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자.
그 사람이 제게 해준 이 말만 믿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었어요.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내가 하는 모든 노력이...내가 하는 모든 최선이.
그 사람을 향해있었어요.
그런데...그렇게 꿈을 향해 쉼없이 달려가는 동안
저는 수많은 것들을 잃어야 했어요.
방송이 그렇거든요..
방송에 한 번 몸을 담그면...시간이 정말 쉼없이 빠르게 흘러가요.
시간의 흐름이 아주 달라서요.
지금도 저는...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느껴져요.
왜 동화 보면... 시간 여행자들 나오잖아요.
저도 지금 그런 느낌이에요.
눈을 감았다 떴는데 14년이란 시간이 흘러간 느낌.
나는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십 여 년이 넘게 흘러간 느낌.
나 혼자만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었어요.
내 시간만 흐르지 않고 있구나.
스무 살 때 연기를 꿈꿨던 그는 현실과 타협했어요. 물론 지금은 더 멋있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반할 만한 좋은 사람이었고... 여전히 멋진 사람이죠.
저는 꿈을 이뤘고...여전히 꿈꾸는 사람이죠.
꿈을 이룬 것 외엔... 다른 수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으니까요. 물론 그 꿈을 통해 얻은 좋은 추억도 물론 많지만요.
우리는 라라랜드처럼... 비극으로 끝났어요.
그렇지만... 제게 참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
그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만든 방송의 이면에는
절 지켜준 부모님, 친구들, 교수님, 선후배들, 방송국 선후배들, 친척들... 첫사랑...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네요.
그러니...힘든 시간들에... 지지 말아야겠어요.
제가 작가의 길을 포기하길 바라는 모든 억압에
지지 않을 거에요
오늘도 저는 좋은 추억들로
힘든 시간을 버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