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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woman, as a writer
여자이기 이전, 작가로.
by
러블리김작가
Nov 25. 2019
여자이기 이전에 작가로.
저는 이미 오래전에 선택했습니다
여자이기 이전에 작가로 살겠다고.
어릴 때 저는 선머슴이었어요
커트머리에 남자 옷 입고 온 동네를 휘저으며
다녔어요
친척 언니가 당시 저를 깡패 같았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도 괴롭히는 남자애들이 있으면
제압하며 살았네요
지금은 굉장히 여성스럽거든요
심지어 화내지 않고 차분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지내고 있어요
술 먹으면 원래의 터프한 제가 나와서
방송하면서부터는 금주하고 있죠
반에서 팔씨름하면 1~2등이었어요
체력장 1등급, 멀리뛰기 선수로 발탁되었었는데
어머니 반대로 못했죠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과 매일 공부를 같이 하고 춤 연습해서 무대 위에도 매년 올라갔었어요
성적은 상위권이었죠 초등학교 때니까요
그랬던 제게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네요
제가 작가 꿈을 꾸기 시작한 건
그 사건들과 맞물려있어요
9살 때였어요
그 어린 나이에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
두 가지나 일어났어요 자잘한 것들도 더 있었지만.
슬픔과 아픔 고통을 꾹꾹 누르며
일기를 쓰던 저에게
9살 때 선생님께서 문학소녀가 되면 좋겠다며
제 아픔을 들어주시고 위로해주셨어요
그때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
생각해보면... 그때 그때마다 좋은 선생님,
교수님, 작가님, 피디님, 국장님들을 만나서
저는 정말 하느님 은총을 많이 받은 사람 같네요
비록 그 슬픔과 고통은 정말로
비극적이었지만요
그리고 그 슬픔과 고통은...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고...
작가로서 저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커다란 고통을
겪어야 했어요
저는 방송사에서 작가로 사는 천국과
제가 방송작가라는 사실을 이용하려고
거짓 사랑으로 다가오는 사람 때문에
지옥 속을 왔다 갔다 했네요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와도
작가 꿈을 저버린 적 없었는데
그런 결심이 흔들린 건
작가 꿈을 꾼 지 26년
방송사에서 원고료를 받으며 작가로 산지 12년째 되던 날. 3년 전이네요
제가 정말 좋아했지만 첫사랑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거든요
바로 제가 작가로 살기 위해서였어요
저는 작가가 너무 되고 싶어서
스무 살 무렵에는
수녀원에 들어가서 이해인 수녀님처럼 살거나
소설 쓰시는 대작가님들 밑에서
일하려고 했었어요
방송작가로 살지 생각도 못하던 시절에요
티브이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땐 방송작가가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었네요
어쨌든 저는 남자에게 헌신해서 밥하고 육아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작가 길도 그만두고
그렇게만 살아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가 걸렸었어요
주위 친한 여자요
첫사랑은 제가 대학교 졸업하는데 옷을 사주고 싶다고... 그런데 사준다고 하면
제가 절대 안 받을 거라고 싫어할 거라고 딴에는 저를 설득한다고
친한 여사친을 데리고 나왔는데요
질투는커녕
한방에 보내주게 되더라고요 그 사람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질투가 없어요
오히려 정말 쿨하게 잘 보내줘요
잘 가요 잘 살아요
근데 사람 마음이 참 웃긴 게
그 사람 주위에 여자를 보는 순간
나는 정이 뚝 떨어졌는데
그 사람은 제가 남자 친구가 있으나 없으나
꾸준히 연락을 해주었었네요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제 남자 친구도 이해해주며
기다려주었는데
그때 저는 자신이 없었나 봐요
그래도 어차피 안 될 거
나머지 숱한 연락도 받지 말걸 그랬다는
후회가 드네요
왜 그 수많은 발신제한 전화를 받아서
마음고생만 숱하게 했을까
그 사람 덕분에 다른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늘 그 사람이 날 찾는 전화에
흔들렸었으니까요
피해도 보고 안 받아도 보고 차단도 해보았지만
참 지겹게도 오랫동안 마음고생하며 좋아했네요
대신 얻은 건 하나 있어요
작가 길이요
숱하게 기다리던 날들 속
그리움들은 한 편의 글이 되고
수많은 책과 영화, 드라마를 보게 되고
또 따뜻한 사랑도 받아보았으니
그걸로 된 거죠
저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그렇게 작가 길을 고수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엉뚱하게도
제 발목에 잡혀 넘어졌지 뭐예요
누군가를 도우려다 넘어졌네요
저를 너무 좋아해 줘서
처음에는 별로였지만
저를 많이 좋아해 주는 마음을 따라갔다가
낭패를 당하고 말았죠
그리고 제가 넘어진 이유를 한참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았어요
요즘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것저것 배워가며
많은 걸 느끼고 있거든요
저는 제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애써왔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써왔는데
저에게도 좋은 사람들이 필요했더라고요
특히 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일수록
좋은 사람을 두었어야 하는 건데
가장 힘든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을 돕고 있었네요
많이 힘들 만도 했어요
버티고 해온 게 대견스러울 정도로
그 힘든 걸 잘 버텨왔어요
그 사람이 저처럼 일어 나주길 바랬는데
도우려다 같이 넘어지면서.
아니... 절 계속 넘어뜨리는 그 사람을 보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저에게도 좋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사랑에는 덫이 있어요
진실된 사랑은 그렇지 않겠지만
가짜 사랑은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죠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
딱 한 사람만 있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를 덫에 걸리게 하는 사랑은 좋은 사랑이 아니에요
아마도 연애란 덫에 걸렸다가 빠져나가기도 하고
진짜 사랑을 만나 내가 발전해가기도 하면서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한가 봅니다
그러니 때로 사랑에 실패하고 배반당해도
괜찮아요
발전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는
나를 사랑하는 건... 영원히 변치 않을 거니까요
나를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좋은 사람이 가진 힘을 발견합니다
많이 위로되고 힘이 되어요
그동안 방송작가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 위로를 주기 위해
그 수많은 밤을 매일 밤을 새우며
제20대. 30대 청춘을 바쳐도
어디선가 저의 440~550만 명 시청자분들이
보고 위로받고 또 하루를 힘내서 사시겠지
그 생각하며 버텼어요
방송작가로 버티며 살아온 제 삶이
축복이고 행복이었다는 걸 깨달아요
토지의 박경리 작가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 말이겠고
후자는 명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저는 여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작가로 살고 싶습니다
방송사에서 국장님, 작가 선배님, 피디, 후배들에게
여자 취급받은 적 없어요
물론 한 번 보고 저 좋다고 쫓아다니거나
결혼하자고 하거나
며느리 삼고 싶다는 피디나 출연자분들도 계셨지만
딱 거기까지.
제가 다 끊어버렸거든요
대신 저를 여자 아닌 사람으로, 작가로 대해 주시는 분들만 남겼죠
남녀차별 없이 똑같은 사람으로 작가로
존중받고 존경받으며 일을 해왔어요
저는 그 만족감이... 제가 여자로 살 때보다
훨씬 크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엄마로서의 삶이나 여자로서의 삶이
싫은 건 아니에요 그것도 참 소중하고 행복한 인생이지만...
현재로서는 죽는 날까지 글 쓰는 작가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작가로 사는 걸 이해해주고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먼 길을 행복하게 걸어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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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크크 <방송작가가 알려주는 글쓰기 수업> 저자. (현) 16부 드라마 4편+장편소설+에세이 집필 중 (연극연출/방송작가/유튜버/선생님) 일로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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