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과 아내

부부

by 러블리김작가

천 원권 화폐 인물로 새겨진 퇴계 이황

그는 조선 성리학의 종주였는데,

지적장애 여성과 결혼했었다고 합니다.


퇴계는 평생 두 번 결혼했는데

먼저 21세에 김해 허씨.

그녀는 두 아들을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0세에 안동 권씨와 재혼했는데, 그녀는 지적장애인이었습니다.

권씨는 연산군 10(1504)때 갑자사화로 희생된

권주의 손녀였는데

권주는 갑자사화 때 경상도 평해(울진)로 귀양을 갔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어요.

그의 부인 이씨는 자결했고,

아들이자 권씨의 아버지인 권질도 제주도로 귀양을 갔어요.

이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다시 관직에 오를 수 있었는데요.

권씨가 태어난 것도그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중종 14년(1519)의 기묘사화와 중종 16년(1521)의 신사무옥으로

권씨의 숙부 권전이 곤장을 맞아 죽고,

숙모는 관비로 끌려갔으며,

권질은 예안으로 귀양갔어요. 권씨는 어린 나이에 그런 참극을 겪은 것이

화근이 되어 지적장애인이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느 날 권씨의 아버지가 딸을 부탁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 의식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장애도 일종의 병으로 인식했어요.

언제든지 나을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이자 개인적인 문제로 봤죠.

그래서 조선 시대엔 장애인도 모두 교육을 받은 뒤

갖가지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먹고 사는 자립생활을 하도록 했어요.

양반층의 경우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과거 시험을 보아 정1품 정승의 벼슬에 오를 수 있었어요.


퇴계는 조선 성리학의 종주답게

아무리 권씨가 부족한 면을 갖고 있다 해도

철저하게 예로 대했는데요.

한 번은 온 식구가 분주하게 제사상을 차리던 중

상 위에서 배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권씨는 얼른 치마 속에 감췄어요.

퇴계의 큰 형수가 그것을 보고 나무랐죠.

방 안에 있던 퇴계가 대신 사과를 했어요.


퇴계는 아내 권씨를 따로 불러서 물어봤어요.

"먹고 싶어서"라고 말하자, 퇴계는 부엌에서 칼을 가져다가

배를 손수 깎아주었다고 합니다.

퇴계는 권씨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사랑과 배려로

감싸주며 살아갔어요.


퇴계의 나이 46세에 권씨가 세상을 떠나자

퇴계는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르고

전처소생 두 아들에게도 친어머니와 같이 시묘살이를 시켰어요.

자신은 권씨의 묘소 건너편 바위 곁에

양진암을 짓고 1년 넘게 머무르며

아내의 넋을 위로해줬어요.

지적장애인 아내에게 끝까지 예를 다했다고 합니다.


퇴계가 제자 중 이함형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충고했어요.


"나는 두 번 장가를 들었는데 하나같이 아주 불행한 경우를 만났지.

이러한 처지에서도 나는 감히 박절하지 않고

애써 아내를 잘 대해준 것이 수십 년이었네.

그동안 마음이 몹시 괴로워 견디기 어려운 적도 있었네.

그래도 어찌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서

부부 간의 큰 인륜을 무시하고, 홀어머니께 걱정을 끼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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