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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ug 11. 2022

맑은 노동

산골 일기 열다섯 번째 

‘실제로 흐르는 땀방울, 불끈 힘이 들어간 근육 그런 현실만이 진짜 삶이다. 

사유 속의 삶은 진짜 삶이 아니다.’라는 

단순 명쾌한 명제를 알려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시골로 내려와서 피상적으로만 이해했던 그의 주장이 현실이 되는 매일을 경험한다. 

시골의 삶에는 자발적인 자유도 존재하지만 

필연적으로 손에 흙을 묻혀야 하는 노동이 뒤따른다. 

층층시하 조직에서는 지위나 권한을 이용하여 시키면 될 일들이 

여기서는 모두 스스로 해내야 하는 노동의 일들이다. 

그런 소소한 일상의 노동들이 매일 쌓인다. 

손 안 댄 잔디밭은 그 키 자람을 시위하듯 보여주며 나의 게으름을 질책한다. 

얼크러진 장미 넝쿨, 웃자란 천리향의 나뭇가지, 꽃대가 기운 쓰러진 메리골드... 

일손을 놓은 뜨락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흐트러진 혼돈으로 가득하다. 

애써 무질서를 견디는 마음이라면 칡넝쿨 얽히듯 살아가겠지만 

정형화된 삶에 익숙했던 습관으로는 참아내기 쉽지 않다. 

우선은 뜨락이 무질서하게 뒤엉키고 나면 

그곳에 발 디딜 틈마저 없는 정글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한차례 호우라도 쓸고 지나간 며칠 후에는 

자란 풀들로 그곳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풀의 기세가 무섭다. 

그러니 매일 변화하는 자연 속에 발품, 손품의 노동이 빠지면 

시골의 터전은 금방 폐허가 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노동의 일상으로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의 삶이 나무나 풀과의 전쟁만은 아니다. 

아파트에서는 유지 보수의 비용을 지불하고 관리사무소가 관리해주는 것이 일상이지만 시골에서는 스스로 고치거나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그런 노동의 순간이 오면 여지없이 

도시 숙맥의 어눌함이 드러나 좌절하게 된다. 

인생의 전성기를 서류를 만지며 명령하고 복종하며 보낸 

자신의 무능하고 무능한 생존력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일이었다.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주차장과 뜨락을 경계 짓는 목책 울타리 작업을 시작했다. 그 작업은 아내의 오랜 숙원이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막막해서 차일피일 미루던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평생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던 내게 

울타리의 현실은 거대한 벽이었다. 

무슨 재료를 사야 하는지, 어떤 공구가 필요한지, 

튼튼한 울타리가 되려면 구조적으로 어떤 보강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오래 유지되려면 어떤 페인트를 칠해야 하는지, 

일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하나하나가 다 어려웠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니 당연하지 싶다가도 반복되는 시행착오 – 말이 시행착오지 사실 바보짓 –에 한숨이 나왔다. 

모든 것이 주먹구구식이다 보니 해놓고 뜯어 내고를 반복할 수밖에. 

나쁜 머리를 대신하여 손발이 고생할 즈음 문득 깨달음이 왔다. 

아~ 그동안 삶의 모든 일들을 남에게 시키고 마치 그것이 능력인 양 돈으로 보상하며 편하게 그리고 바보처럼 잘도 살아왔구나!      

 

귀촌을 하고 나서야 귀촌이라는 단어 속에는 삶의 대부분을 

스스로의 노동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건 직장에서 서류를 만들고, 회의하고, 일정을 관리하고, 명령하고, 복종한 대가로 

벌어들인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구조와는 전혀 다른 일이다. 

귀촌의 삶에는 자신의 노동력을 들여 자신의 삶을 이루어가야 하는 

원초적이고 일차원적 요소가 필수적이다. 

여전히 사람 사서 일 시키면 그만인 부자들이야 여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는 반드시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귀촌 초보자가 생애 최초로 맞닥뜨린 울타리가 어떠했겠는가?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해가 뉘엿해서야 얼추 끝이 났다.      


그날 밤에 초보의 어설픔을 시험이라도 하듯 유난히 큰 바람이 들었다. 

울울한 바람소리가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울타리 걱정이 되어 아침 일찍 뜨락을 내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밤새 넘어진 울타리의 비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무너진 나무 울타리가 집의 경계로 심은 남천을 

처참하게 깔아뭉개며 넘어져 있었다. 

문제는 얕게 박은 주춧돌과 바람을 고려하지 않고 촘촘하게 덧댄 판재의 간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모두 뜯어내고 울타리를 다시 만들 수밖에... 

수백 번의 드릴 작업으로 박은 나사를 모두 풀어내고 

울타리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제기랄. 


투덜 투덜대면서 이번에는 태풍이 와도 끄떡없을 만큼 

이번에는 오버해서 작업을 반복했다. 

볼품은 없어도 마침내 울타리가 완성되고 울타리는 여직까지 끄떡없다.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수업료를 내고 나서야 울타리 세우는 법 하나를 배웠다. 

이제 집도 세월과 함께 낡아질 테고 

그때마다 나는 생활의 터전을 유지 보수하는 기술들을 하나둘 배우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세워진 울타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동안 도시에서 기업의 현장 속에서 

나름 열심히 삶의 의미를 들쑤시며 제법 잘 살았다고 자부해온 

모든 것들이 허망해 보인다. 

언젠가 ‘정글의 법칙’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정글 한가운데 떨어져 생활하던 

여배우가 하염없이 울며 내뱉던 독백이 떠오른다.      


“도시에서 나름 가치 있는 배우라고,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했었는데 이곳에서는 나의 존재가치가 산산이 부서져 버리네요. 

배가 이렇게 고픈데 입에 들어갈 음식 하나 스스로 구하지 못하고, 

아무리 추워도 어쩌지 못하는 무능함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여기서는 나를 존재하게 해 준 연기(演技)가 아무런 의미가 없네요. 

나를 인정해 줄 무대도, 관객들의 환호도 없어요. 

나는 다만 생존의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무력하고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네요.”  


도시에서의 삶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복잡성에 기대어 밥벌이를 했는데 시골에서의 삶은 보다 더 원초적이다. 

삶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복잡성을 다 제거하고 나면 

먹거리를 심고 가꾸어 배를 채우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만이 절실한 가치로 남는다. 

시골에 정착하며 아직 경작을 통해 생존을 이어나가야 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고 이루어 내야 하는 

직접적인 노동의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먹고살았다는 생각에 

문득 지나온 삶의 편린들이 마음을 괴롭게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부터라도 거치러 진 손과 발의 고단한 기억들을 새기며 살아야지. 

아직은 미덥지 않은 솜씨라 밤새 바람소리가 날카로울 때면 

울타리가 무사한지 본능적으로 창밖을 내다보게 되지만. 

나에게도 언젠가는 부족한 부분을 척척 메우는 시골 살이 전문가 행세를 

할 날이 오겠지?    

  

오늘도 여전한 울타리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나는 조금씩 노동의 삶이 좋아진다. 

땀 흘리는 노동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 

정확히 땀 흘린 만큼 질서가 생기고 흐트러진 것들이 정리된다. 

이 세계에는 지름길도 없고 약삭빠른 꾀도 통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더 간 손길만큼 키워지고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세계다. 

그동안은 무언가를 관리한다는 미명 아래 먹물 쟁이로 살아온 날이 많았는데 

노동을 통해 몸은 고되어도 마음이 맑아져 가는 것을 매일 느낀다.  


- 흙과 더불어 -      


손톱 밑에 때가 낀다.

씻어도 다음 날이면 손톱 밑이 까맣다.    

 

산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밭일, 흙일의 날들이다.     


내가 내 손을 맞잡아도

까슬까슬한 흙내가 난다.      


그래도 해야 할 일들은

흙무더기처럼 쌓인다.     


어느새 뉘엿한 하루해가

긴 그림자로 달아나고     

소박해서 투박한 삶이 

느릿느릿 잰걸음을 놓는다.     


그 걸음의 거친 등걸 속에서

고운 빛 풀꽃이 자라나리라.     


그동안은 제 몸 하나 가꾸느라

세월의 종잇장을 찢으며 살았는데     

이제는 흙이 되어가는 손으로 

살아있는 모든 푸른 뿌리를 보듬는다.    

 

하지만 흙손이 낯선 걸 보니 

생명 짓는 일이 아직 멀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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