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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ug 17. 2022

흑묘백묘 이야기

산골 일기 열아홉 번째 

지난주 수도권과 경기 일대를 강타했던 집중호우가 남쪽까지 밀려 내려왔다. 

밤새 뇌우를 동반한 큰 비가 내렸다. 

하늘은 여전히 먹장구름이고 비는 내렸다 개였다 를 반복하며 진한 물줄기를 쏟아낸다. 습기에 약한 식물들은 벌써부터 시름시름 기세를 잃어가고 있다. 

시골에서 비가 고마운 건 사실이지만 너무 과하면 문제가 된다. 

물이 쓸고 간 자리에는 남는 것이 없다는 말처럼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공포스럽다.    

  

그런 와중에 귀를 의심케 하는 뉴스를 들었다.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이런 쌍 X의 자식 같으니라고!


수해로 무고한 인명피해가 난 곳에 자원봉사 나온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진보니 보수니, 여니 야니, 정치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실로 역대급 망언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로 휩쓸린 삶의 터전 앞에 막막한 주민들을 향해 어떻게 저런 말을 뱉을 수 있을까? 생각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수해현장에 나온 이유가 주민들의 어려움을 돕고자 함이 아니라 

보여주기 식 홍보였다는 속내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혹자는 그 망언에 대해 무의식 중에 농담으로 나온 얘기라 했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말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의 본성 속에 감춰진 수준이 

딱 그 수준이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편 문화. 그 조직의 대표라는 사람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나? 봉사하러 나온 큰 틀만 봐 달라 했다. 

내편이면 망언을 해도 괜찮고 잘못을 해도 무작정 두둔하고 보는 내편 문화로 

그를 감쌌다. 

정의고 공정이고 상식이고 다 필요 없이 그가 누구 편이냐 로 구분하고 

판가름하는 저열함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목청을 높인다. 

사람 위에 사람 있다고 믿는 오만불손한 못된 인간들 같으니라고!   

  

당연히 분노의 여론이 들끓었다. 

성난 여론은 그따위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지역 주민을 비난하고 질책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질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까지 그런 인물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적당히 사과하고 

이미지 세탁을 해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믿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은 

반드시 잊혀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군중의 아둔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독버섯처럼 다시 소생하고 소생한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 국민을 개, 돼지로 본다는 자조 섞인 말일 것이다. 

나는 그 국회의원이 다음에 또다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이다. 

만일 그가 다시 공천을 얻거나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면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개, 돼지가 분명할 것이다. 

아니 개, 돼지 취급받아도 할 말이  없을 테다.     


문제는 왜 저런 수준의 사람들이 계속 지도자의 자리에 앉게 되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치부를 감춘 교묘한 자기 포장지에 현혹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의 됨됨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군중의 우매함 때문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특별히 최근에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편향된 정보로 가득 찬 유튜브와 같은 

콘텐츠의 역할도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진 사람들이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만을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니 본인도 점점 왜곡된 진실의 추종자로 변모하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어떤 정보를 접할 때 과연 그러 한가 깊이 생각해 보고 

다른 견해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 판단하는 습관이 정말 중요하다. 

카더라 방송에 현혹되어 정신이 왜곡되면 점점 더 듣기 좋은 이야기만 

듣게 되어 왜곡의 깊이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무지 불통인 사람들을 접하면서 나는 여전히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실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포장지 뒤에 숨어 

자기를 꽁꽁 감춘 무뢰배들을 우리의 리더라고 뽑게 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수십, 수백억의 재산을 가진 후보자들이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의 터전이 아니었던 

시장터에 가서 어묵과 순대를 사 먹으며 서민 코스프레를 할 때 나는 정말 기가 찬다. 

하지만 그 앞에서 열광하는 가난한 군중을 보면 나는 더 기가 막힌다. 

자신들과는 태생부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정확히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 그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지 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덩샤오핑은 소위 ‘흑묘백묘론’을 내세워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루어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그의 논리에 따라 

인민이 잘 살 수만 있다면 그 체제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상관없다는 

과감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흑묘백묘론’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2004년 캐나다 공영방송이 공모한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에 선정된 

토미 더글러스의 생쥐 이야기다. 

1962년 캐나다 의회에서 말한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생쥐들이 검은 고양이를 뽑았다가 호되게 당해서 

다음에는 흰 고양이를 대안으로 뽑았지만 여전히 죽어나가는 것은 생쥐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검은 고양이를 뽑았더니 돌아온 것은 여전히 생쥐의 대학살이었다. 

애초의 문제는 생쥐의 지도자는 생쥐가 되어야 하는데 

고양이가 된 것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그 누구를 뽑아도 생쥐를 잡아먹는 것이 정치인의 생리 아니냐는 

신랄한 풍자가 담긴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놈이 그놈인 정치인 중에 조금 덜 나쁜 놈을 뽑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라는 자탄식이 생겼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민초들에게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이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노리는 

흰 고양이를 뽑았다가 검은 고양이를 뽑는 무한반복을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비 개인 틈에 뜨락에 번져가는 잡초를 뽑으며 

나도 모르게 ‘이놈’ ‘이놈’ 하는 추임새가 절로 든다. 

청명한 가을 햇살은 언제쯤 비쳐 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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