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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lee Sep 17. 2020

아빠를 닮은 사랑

가을 3호


이번 주의 생각


며칠 전, 창 밖을 내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를 보고 '아빠!' 하고 크게 불렀다. 고개를 들어 활짝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드는 아빠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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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살이 되던 해였다. 아빠의 직장 때문에, 우리 가족은 7년이라는 세월을 떨어져 지냈다. 아빠는 보통 금요일 늦은 밤, 아니면 토요일 이른 아침에 집에 왔다가 일요일 해질 무렵이 되면 다시 돌아갔다. 금요일에는 아빠가 온다는 생각에 내 주위 모든 것들이 조금 더 예뻐 보이는, 그런 넉넉한 마음이 되었던 것 같다. 반대로 일요일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계를 바라보며 흘러간 시간을 아쉬워했다.


헤어짐과 만남. 다시 만남과 헤어짐. 매주 우리에게 ‘끝’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틀도 채 되지 않던 그 시간을 늘 후회 없이 보냈던 것 같다.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오대산 계곡 물에 몸을 담갔던 여름, 사과를 베어 물며 아빠 손을 잡고 올랐던 주왕산에서의 가을, 강가에서 새 밥 씨를 후후 불어 멀리 날리던 초 겨울... 여전히 찬란한 빛으로 남아있는 기억들 뒤엔 분명 아프고 시린 기억도 있다.  


쉽게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이별에 무뎌지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주말마다 오는 아빠를 더 이상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고, 뽀뽀를 해주고 내 앞에 볼을 대는 아빠에게 인색했으며, 함께 떠나는 여행마저 안 가면 그만인 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딱 그 무렵, 아빠가 우리 곁에 돌아왔다. 7년 만에 우리는 매일의 일상을 함께 하게 되었다. 헤어짐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소소하지만 우리에겐 평범하지는 않았던 일상. 필요 이상으로 점잖았던 나는 돌아온 아빠를 두 팔 벌려 환영해주지 못했다. 돌아와서 행복하다고, 함께 지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떨어져 있던 세월이 길었던 만큼, 우리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고 아빠는 사랑하는 딸 들과 관계가 틀어진 건 아닐까 하며 많이 속상해했다.


아빠가 돌아온 지 다시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가끔 10살의 나로 돌아가곤 한다. 못 이기는 척, 아빠한테 뽀뽀를 해주고 웃긴 춤을 추며 재롱을 부린다. 사랑한다는 말에 장난 섞인 말투로 사랑한다고 답한다. 화나서 씩씩 거리다가도 습관적으로 아빠한테 뽀뽀를 해대던 그때의 내가 되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영원하지 못할 관계에 집중하는 동안 아빠는 그저 나를 더 사랑했으며, 언제라도 더 많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간의 공격에도 끄떡없던 그 근사한 기억들을 떠올리면, 나는 용기를 내고 더 어려지고 싶다. '오글거린다'는 말을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기어코 내뱉고야 만다. 나는 그렇게 아빠를 닮아갔다.



이번 주의 콘텐츠


Book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과 모든 기억이 거기에 고스란히 남아있겠지. 자네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에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이야.


Book

로맹 가리 <자기 앞의 >. 프랑스 출신 작가의 소설 들을 읽으며, 원문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책을 덮자마자 불어 수업을 신청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고, 상처 받을까 봐, 나의 것을 잃어버리고 손해 볼까 봐 두려워하는 나약한 마음에 문을 두드린다. 너의 안에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삶은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가난하고 공허한 것일지 모른다고. - 소설가 최은영


Book

생택쥐페리 <인간의 대지>. 작가는 비행업무 도중 사막에 추락하게 되고, 생사의 기로에서 자신의 동료와 함께 했던 시간을 담은 책이다. 내가 사랑하는 책 TOP 5.

한 직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데 있을지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부’란 하나뿐이고, 그것은 ‘인간관계’라는 부이니까. 메르모 같은 친구와의 우정, 함께 겪은 시련을 통해 영원히 맺어진 동료와의 우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법이다.
그는 자유로웠으므로 이미 본질적인 재산을 소유한 것이었다. 사랑받을 권리, 북쪽 혹은 남쪽으로 걸어갈 권리, 일을 해내서 빵 살 돈을 벌 권리 같은 본질적인 인간의 부를 말이다. 그러니 그 돈이란 게 무슨 소용 이겠는가.. 이처럼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들과 연결된 상태로 하나의 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마치 심한 허기를 느끼듯 자연스럽게.
한번 더, 우리는 깨닫는다. 조난자는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난당한 이들을 바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만약 내가 세상에 혼자였다면 나는 그냥 뻗어버렸을 거야. 프레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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