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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lee Mar 07. 2021

대화의 밀도

봄 1호



이번 주의 생각


어제 기다리던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부산에서 헤더와 서로의 집에 보내 둔 편지였다.


지난주, 2박 3일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다 바다를 보고 하루 종일 이야기 하고 싶어 부산에 갔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분명 여행이었지만 여행 같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일상을 여행처럼 제법 근사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하고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는 내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비교적 뚜렷한 사람인데 헤더와 있으면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진다. 선택을 해야 하거나 질문에 답을 하는 상황에서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데 자꾸 내 입에서 ‘정말 다 좋은데..’ 같은 말들이 나가려고 한다. 실망스러운 음식을 먹더라도, 예상을 빗나간 장소에 가게 되더라도 함께 나누게 될 대화는 분명 신선하고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일까.


헤더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의 가을이었다. 학교에서 같은 과 선배 아홉 명과 텍사스에 위치한 한 대학으로 국제 교류를 가게 되었고 떠나기 전 가을에는 미국에서 하게 될 발표와 기업탐방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나는 아홉 명의 언니들과 각자 조금씩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서로를 알아갔는데 헤더와는 빠르게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듯했다. 시시콜콜한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말을 고르지 않아도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 저절로 밀도가 생겼다. 나는 그녀가 스스로를 향한 기대와 건강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좋았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게 주변을 웃게 만드는 힘이 부러웠다. 그런 언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느 때와 달랐다. 내 발걸음은 분명 가볍고 경쾌했지만 마음속에는 묵직하고 진한 무언가가 들어찼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이런 운명의 모양을 한 우연은 절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이번 주의 콘텐츠


Book

요시모토 바나나 <티티새>

우리 모두는 친구가   같은 신나는 직감에 충만해 있었다. 그런 람들끼리는 금방 아는 법이다.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모두가 똑같이 확신을 갖는다. 그것이 바로 오래 지속될  있는 친구와의 만남이다.
그 사람들에게서 서로에게 끌린 나름의 확실한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외모가 비슷하다든가, 생활 태도나 옷을 입는 취향 등이 비슷하다든가, 겉보기는 조화롭지 못한 커플이라도 오래 함께 하다 보면 음, 사귈 만해. 하고 수긍이 가는 부분이 생기는 법이다.
요즘, 너한테 얼마나 편지를 많이 썼는지 모르겠다. 쓰고는 찢어버리고 그러고는 또 쓰고. 왜 너일까? 하지만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 너만이 내 말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무래도 진짜로 죽어가는 듯한 내 마음속의 희망이라고는 너한테 편지를 남기겠다는 것뿐이야.



Book

장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

물리적 거리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순수한 정신에 의해서는 두 지점 간의 거리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연민을 통한 혹은 우정이나 사랑에 의한 두 존재의 결합 같은 것을 우리는 예감할 따름이다. 그럴 때 사람은 자기 몸이 있는 곳이 아니라 자기의 사랑이 있는 곳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친구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피타고라스는, 220과 284가 그런 것처럼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220의 약수들은 따져보면 이들의 총합이 284이며 284의 약수들의 총합은 220임을 알 수 있다. 완전수는 6이나 28처럼 자신들의 약수 들의 총합과 같은 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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