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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 Apr 21. 2019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문제적 만남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문제적 만남


마가복음에 나오는 한 몸이 되었다는 말씀엔 정신적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의미까지 담겨있다. 자유를 추구하는 이 세대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교회에서 논하는 게 의미가 있냐만 없다고 방관하면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을 할 때 주로 하기 쉬운 실수가 있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이러는 거야.” 돌아서서 후회하지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반복되는 실수는 그 사람의 인격이 되어버린다. 사랑하는 만큼 친밀해지다 보면 타협을 찾는 과정이 없는 자유를 얻은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설 자리를 사랑한다는 말로 포장해버린다. 

“너를 정말 사랑하니까.”

“너를 믿으니까.”

친밀하다고 해서 무슨 말과 행동이든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돕는 베필로 아내를 준 것이 아니라 ‘서로’를 주었다. 서로의 부족함, 결핍, 연약함을 채우는 관계로 둘을 예비하셨다. 그리고 오직 결혼 안에서만 그 관계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장 5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4절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너무 어렵다.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너무 사랑한다. 이 시대에 과연 죄인이 아닌 사람이 있겠냐만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라는 마가복음 말씀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잘라내는 결단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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