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부점장

속도에 적응 못한 베테랑의 그림자

by Ham


2005년이었나, 2006년이었나…

정확하진 않다. 다만 그때 내가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그 매장은 전국 매출 1, 2위를 오가던 곳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매일이 전쟁 같았고, 정신줄 놓을 틈 없이 돌아갔다. 그 바쁜 와중에, 유독 오래 기억에 남은 부점장이 한 명 있다.

처음엔 그냥, 눈치가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

고객의 얼굴이나 매장 분위기를 잘 못 읽는 건 기본이고, 피크 타임엔 무얼 먼저 해야 할지도 헷갈려했다. 동선은 자주 꼬였고, 다른 파트너들의 리듬도 덩달아 깨졌다. 전체 업무 흐름이 흐트러지는 일이 반복됐고, 일처리는 늘 한 박자 늦었다. 자연스럽게 효율도 떨어졌고, 고객 불만도 잦았다.

하지만 묘하게,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늘 조용했고, 특별히 반항적이지도 않았다. 혼자 무언가를 할 땐 집중하는 기색도 있었고, 그게 괜히 신경 쓰였다. 그냥 뭔가가 안 맞는 사람… 그런 느낌이었다.

어느 날 문득, 내 초창기 시절이 떠올랐다.

회사도 한창 커지던 때였고, 웬만하면 연차만으로도 승진이 되던 분위기였다. 아마 그도 그런 시절에 부점장이 되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손님은 더 예민해졌고, 해야 할 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속도, 감각, 그리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보는 능력—all or nothing처럼 요구됐다.

그가 겪고 있는 건 무능이 아니라, 그냥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과거 방식에 남아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 그 방식 안에서만 익숙했던 건지도.

그래서, 어느 날 그에게 조용히 면담을 요청했다.

처음 던진 질문은 이랬다.

“부점장님, 스타벅스 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건 내가 잘했다’, 혹은 ‘참 재밌었다’ 싶었던 거, 뭐 있으세요?”

그는 순간 멍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기는 뭔가를 혼자 조립하고 만들 때 가장 좋다고 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자기 속도로 몰입할 수 있는 그런 시간. 그게 정말 좋다고.

왜 스타벅스에 왔냐고 묻자, “딱히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지원했는데 덜컥 됐고, 처음 일한 매장은 비교적 한가했거든요. 커피 만드는 건 나름 괜찮았어요. 천천히, 한 잔씩.”

나는 가만히 듣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요. 요즘, 힘드시죠? 사람들이 부점장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느끼실 것 같아서.”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치 말하려다가, 한숨을 내쉬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통솔하는 역할이 특히… 많이 버겁습니다.”

그 말이 어쩐지 마음에 박혔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조금씩, 다음을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아직 젊으시고, 충분히 다른 길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 계속 치이며 자존감 무너뜨리는 것보다, 잘할 수 있는 걸 다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도와드릴 수 있다면… 돕고 싶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다음 날부터 무언가 달라졌다.

출근길, 손에 들린 텀블러가 덜 흔들리는 것 같았고, 말투에 작은 여유가 섞였다.

커피머신 옆에서 그가 잠시 멈춰 서 있을 때, 표정에 뭔가… 단단한 게 생긴 듯했다.

동료들은 여전히 어려워했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를 조금 더 지켜보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 그가 먼저 면담을 신청했다.

조금 더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이에요. 제 얘기를 이렇게 진심으로 들어주신 분. 다른 점장님들은 그냥 전근 보내려고만 하셨거든요. 점장님처럼, 제 일처럼 같이 고민해주신 분은 없었어요.”

그는 그사이 전자기기 조립 쪽을 알아봤다고 했다.

“혼자 몰입해서 손 쓰는 일, 그런 건 자신 있어요.”

그리고는 아주 조용히,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잠깐 정적이 흘렀고, 그는 어색하게 웃더니—

말끝을 맴돌다가,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 친구하죠.”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회사 안에선 아직 역할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나가면, 그때는 진짜 친구로 맞이하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눈치가 좀 없었지만, 그 순수한 눈빛은… 왠지 믿을 수 있었다.

몇 달 뒤 그는 퇴사했다.

그날 아침도 평소처럼 출근한 얼굴이었고,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는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어떤 의미 있는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길에서 그를 다시 봤다.

멀리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표정이, 어깨가, 걸음걸이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말을 걸까 하다, 그냥 지나쳤다.

그의 뒷모습이 오래도록 남았다.

자기한테 맞는 길을, 진짜로 찾아 떠난 사람의 단단한 뒷모습.

그건, 참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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