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by 카밀리언

페이지를 넘기며
지식의 모래로 성을 쌓는다
그러나 망각의 바람은 늘 모래알을 흩어버린다
내 기억력이여, 남은 건 바람 자국뿐


기억할 수 없는 고백처럼 무거운 순간에도
글자와 수식의 홍수를 붙잡으려
손끝에 집착을 매단다
그러나 머릿속은 외로운 빈방처럼 울린다


문제와 틀린 답 사이
혼란과 공허가 속삭인다
나는 미로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하지만
시간은 시험을 향해 쉼 없이 흘러간다


채점지 위 사선들이
빗줄기처럼 번지고
강물처럼 모여 내 점수를 바다로 실어간다


익사해도 될 만큼 잠겨도
포기란 단어까지 잊은 탓일까
젖은 손으로 또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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