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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서기 Aug 19. 2021

굳세어라 내 딸


   

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말썽 한번 일으키는 일이 없이 착했던 딸이 어느 날부터 부쩍 말수가 줄 더니 꼬챙이처럼 점점 마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아무리 물어도 대답조차 하기 싫어했다. 성적도 점점 떨어졌지만 아이를 다그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딸이 반 친구들로부터 일 년 가까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다수라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딸에게 일어난 것이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2년 넘게 한 아이로부터 집요하게 왕따를 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결국 퇴학을 당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이후로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자식에게만큼은 그런 아픔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보니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바로 딸아이 고등학교 졸업식 때였다.

딸의 졸업은 내게도 설레는 일이었으나 그 생각은 졸업식장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모두들 해방감을 맛보며 왁자지껄 수다를 벌이기에 바빴으나 딸은 그때도 혼자였다.

그 모습을 보자 하늘이 무너질 듯 고통이 밀려왔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미웠다.

내 딸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어쩌면….

순간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말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정말 그럴까….

당시 딸은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한 뼘이나 큰 덕분에 맨 뒤에 앉아 있었다. 딸이 무안할까 싶어 바로 뒤에 자리를 잡고는 작은 소리로 농담도 하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으나 사실 간신히 속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데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심장 속까지 엄습을 해왔다. 앞으로 딸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하며, 딸의 아픔, 내 아픔들을 교문 담벼락 밑에 묻어버렸다. 그때 마음으로는 딸 역시 학창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 따윈 영원히 기대하기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참 후 우린 평소에 눈요기만 했던 레스토랑으로 가서 거나하게 칼질을 했는데, 스테이크를 쓸 면서 속상한 마음도 전부 산산조각을 냈다.     


그날 이후로 항시 딸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섰다. 과연 사회생활을 할 수는 있을까, 대인관계는 원만할까, 등등 염려가 떠나질 않았지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해주었다.

목숨처럼 아끼는 친구 대신에 항상 딸 곁에서 때로는 친구로, 언니로, 또 때로는 좋은 스승이 되어주려고 혼신을 다했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린 결과 예전의 밝은 성격을 조금씩 회복해가는 것을 보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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