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가 적자를 보기 시작하면서 급여에도 차질이 있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국장님은 부담을 느꼈는지 두 달 정도 일을 쉬는 것이 어떤지 조심스레 의견을 물어왔다. 우려하던 일이었지만 마음은 의외로 덤덤했다. 그러나 손을 놓게 되면 감각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설령 다시 시작하더라도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돈 때문에 이일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30분쯤 지났을까, 욕심을 내려놓자는 결론을 내리고 국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냥 되는대로 주시고 일은 계속할게요. 다른 생각 안 하고 맘 편하게 일하려고요."
그렇게 말을 건네자 국장님은 너무나 고마워했다. 국장님과 나는 오랫동안 힘든 부분을 함께 다독거려온 동지이자 좋은 파트너다. 나이를 개의치 않고 선뜻 채용해준 것에 대해 항상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아무리 돈이라는 놈이 매력이 있다 해도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생각하면 기분 좋은 일이다. 어쩌면 글이라는 무한한 세계에서 작게나마 한 공간을 누빈다는 것이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길이 그다지 녹록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묘한 이질감에 빠질 때도 많다. 대형 서점가에서는 봇물 터지듯이 날마다 새로운 서적들을 쏟아내지만 무명으로 사라지거나 분쇄기 안에서 운명을 다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책들은 부지기수로 창고로 되돌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독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하는 것처럼 두려운 일도 없다. 막연한 두려움에 지금까지 한 줄의 글조차도 세상에 나놓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을 겨냥한 글을 쓸 것인가, 과연 주목을 받을 수는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하는 무명의 작가로 남을 것인지는 내 스스로가 풀어 가야 할 숙명적인 과제다. 이처럼 급박한 현실을 몸으로 겪을 때마다 수차례 꿈을 접기도 하지만 문학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이 결국은 학교까지 이끌어 주었다.
O·T가 있던 날, 솔향기의 신선함이 머릿속 깊이 스미는 것을 느꼈다. 얼마 만에 맛보는 자유 함인지, 그 주 내내 교수님의 “좋은 작가가 되려면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고 하신 말씀이 뇌 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 말이 내게 신선한 충격처럼 다가왔다. 너무나 잘 아는 말이었지만 이번처럼 강하게 와닿았던 적도 없었다. 기질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동화가 아름답듯이,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지나칠 만큼 고집스러웠던 편식 주의도 이참에 바꾸고 싶다.
한 주간 내내 톨스토이와 함께 여행을 하며 작은 기쁨을 누렸으나 일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그 행복도 얼마 가지 못했다. 일주일이 얼마나 바쁜지 일과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 아니 주부로 또 다른 일로 마음이 분주하기만 했다. 늦깎이로 신입이 되고 보니 혹여 공부에 뒤쳐질까 싶어 새벽 3시 넘어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고, 급기야는 몸에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순간 어떤 깨달음이 왔다.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공부가 잘되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두 가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를 내어 국장님께 출근이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재택근무를 권유하셨고,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십여 년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얄팍한 명예심에 매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자의 조합 같은 원고를 대하면서 스스로의 우월감에 빠지기도 했고, 맘속으로 사형선고를 내린 원고도 한둘이 아니다. 원고를 교정하면서 마음 한편에 글을 쓰고 싶다는 간절 함들이 스멀스멀 밀고 올라올 때가 많았지만 정작 글 심과는 멀어져 있었다. 이제라도 본궤도 안에 서게 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삶이라는 고뇌 속에 얽히고설킨 모난 가시들이 잘려 나감으로 성숙해져 가듯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따뜻함을 주는 글쟁이이고 싶다. 비록 작가의 이름은 잊혀 질지라도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만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