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우연히 교정직 선배이자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효라빠' 님을 온라인에서 알게 되었다.
'유도선수셨나?'
도복을 입고 땀을 흘리고 있는 열정적인 그의 프로필 사진이 지금도 땀 흘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계실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알림말은 '문무겸비 작가'였다.
'부럽네... 이 분 궁금하다. 브런치를 완결하기 전에 꼭 한 번 대화해 봐야지.'
나는 본 브런치북 개요를 완성하기도 전에 목차 스크롤을 내려 마지막 목차를 클릭해 적었다.
'교도관 작가와의 인터뷰.'
그리고 나서 선배의 글도 읽고 댓글도 달면서 한동안 교류했다. 정체성이 비슷한 사람과의 소통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렇게 인터뷰 회차는 1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선배에게 인터뷰를 제안해 봤다. 선배는 흔쾌히 수락했다.
같은 교도관 후배와의 인터뷰라 더 긴장이 된다고 하신 교도관 선배는 시간을 쪼개어가며 내 인터뷰에 성실히 답해 주셨다. 뭐든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시는 분이셔서 그런지 후배와의 인터뷰에도 본인의 삶을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좋아하는 것을 향한 탈출만이 답은 아니다.
"교도관이 되기전에는푸드트럭을 하셨다구요?"
처음부터 교도관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그의 말에 마음속으로 내적 친밀감이 더 생겼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다른 직렬 7급 공채 시험을 준비하다 계속된 낙방으로 공부를 접고 일반회사에 취직했어요. 어느 정도 돈을 번 후엔 푸드 트럭에 도전했지요. 결국엔 푸드 트럭도 망했지만요.
그러다 문득, 사업은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은 안정적인 직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정직에 근무하던 대학 선배가 교도관도 괜찮은 직업이라고 권유해서 교정직 9급 공채 시험을 보고 입직했습니다."
7년차 교도관인 나보다 2배의경험을 한 선배에게 다시 입직하는 날로 돌아간다면 어떤 마음으로 임했을지 물었다.
"처음 시작할 때 교도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단순히 범죄자를 지키는 일이겠지'라며 생각하고 들어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인근 고등학교에 강사로 직업 소개 강의를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중에 직업 선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끝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
'아닌데.'
어쩌다 보니 교도관이 되었어요. 학생 때부터 교도관이 되고 싶다는 꿈은 없었죠.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 말에 대한 정답도 제가 이끌어냈어요. 그게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구나!'
그 중심은 긍정적 마인드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일했을 거냐고 물어봤었죠? 우리 교도관이 가져야 할 직업관과 마인드는 '긍정' 이라고 생각해요. "
나는 인터뷰가 끝난 지금도 선배가 말씀하신 내용 중에 단 한 마디가 머리에 남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라'는 말.
이제껏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온 질문이 바로 '나는 이 일을 좋아하고 있는가?'였기 때문이었다. 대답은 "예니오"였다. 마음으로는 '예'를 외치고 싶지만 실제로는 '아니오'니까. 하루빨리 전업작가로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 새 삶을 살 줄로 기대했던 수용자가 교화되지 않은 채 재입소하는 모습을 볼 때면 화가 난다. 교도관으로서 공들여 쌓아 온 내 정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선배의 조언대로, 다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사랑하기로 했다.
이 일을 사랑하기로 한 순간, 비로소 교도소에서 첫 해방을 맞이했다.
선배가 당부차 말했다.
"힘이 들 때마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언젠가는 무언가이루어져 있어요.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설령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과정에 충실했고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이 남지 않을 거예요."
교도관의 꿈?
그는 나와 같이 교대근무를 하는 보안과 야간부 소속이었다.
야간에는 미결팀(형이 확정되지 않은 수용자들이 있는 곳)의 부팀장 역할을 한다. 수용자 고충상담 업무를 주로 하고 미결 팀장을 보좌하기도 하는 자리다.
"선배님은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기뻤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
큰 보람이나 기뻤던 경험이 쉽게 생각나지 않았던 나는 그 보람을 대신 기쁘게 이야기해 줄 선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선배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교도관이라는 일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성과가 나오는 직업이 아니니까요."
"그럼 교도관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은요?"
"이 직업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꿈도 딱히 없죠."
"(놀라며)그렇군요..."
"없다고 하면 성의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일은 성과를 내는 게 아니니까요. 대신 사람을 관리하는 일인지라 물 흐르듯 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회정의 실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고 여기구요. 잔잔히 흐르는 냇물이 모이고 모여 큰 바다가 되듯 고요하게 사회에 작은 기여를 하는 것이 우리네 직업이죠."
선배는 '보람, 꿈, 목표'라는 이상적인 나의 물음에 현실적인 답을 내보인 것에 마음이 조금 쓰였는지 곧이어 긍정적인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긍정적 차원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고 한다면 하나 있는데 제가 책 <태백산맥> 을 필사할 때였었죠. 사동 담당일때 근무지에서도 틈틈이 했는데, 어느 젊은 수용자가 그걸 궁금하게 여기고 본인도 좋아하는 책 <데미안>을 필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과 뉘우침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출소해서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고 형님, 동생사이로 지내면서 안부도 주고받습니다."
교도관은 수용자들의 거창한 변화를 보기 어렵다. 틀에 박힌 채 똑같이 흘러가는 교도소는쳇바퀴와 같다. 햄스터 같은 그들.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행동들 뿐이라 변화가 적은 건 아닐까. 그래서 이런 작지만 긍정적인 에피소드는 괜히 교도관을 하루 종일 흐뭇하게 한다.
힘들지만 괜찮아
"그렇다면 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있나요? "
" 20여 년 근무하며 힘든 건 수용자에 대한 부분이죠. 정당하게 공무집행을 했는데 고소, 고발을 당해 조사를 받고 그런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힘들어요. 얼마 전에도 모 수용자가 폭행당했다고 저를 고소했었어요."
"그렇군요."
"그럴 땐 가족들을 보고 힘을 냅니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큰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평소 좋아하는 운동이나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
선배는 글쓰기와 운동은 서로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꾸준히 운동해온 지도 어느새 몇십 년이 됐어요. 몸을 수련하는 것과 정신을 수련하는 것, 서로 방향성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같거든요.
운동과 글쓰기가 탈출구가 되었고, 해방의 열쇠가 되어준 것이다.
사람들마다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자기만의 열쇠가 있다. 교도관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보니 사람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퇴근 후에는 어린이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어린이집 선생님 친구와 퇴근 후에는 만두를먹지 않는 만두가게 사장 허 여사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