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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곰천사 Nov 17. 2016

레포츠는 즐기지 못하고

남미로 맨땅에 헤딩 -32

악천후가 올 것 같은 푸콘

파타고니아 관광이 물 건너갔으니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지역을 물색해야 했다. 영문판 론니플래닛 가이드북을 이리저리 뒤지다 발견한 레포츠의 도시 푸콘(Pucon). 활화산 투어와 온천, 래프팅 등으로 유명했다. 이미 다녀간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다들 호평 일색이다. 게다가 판촉 기간으로 절반 가격에 버스를 탈 수 있었으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푸에르토몬트에 머무는 내내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떠나는 날까지 이슬비는 그치지 않았다. 푸콘까지는 대략 6시간 정도가 소요될 예정. 두어 시간을 잘 달리던 버스가 고장이 났는지 한 시간이 넘도록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중고차를 많이 수입해서 쓰는 남미에서는 흔한 장면.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 같았으면 기사를 재촉했겠지만, 매사에 여유가 넘치는 남미 사람들은 태평하기만 했다. 후속 버스가 도착해 짐을 옮기고 갈아타는 동안 불평 한마디 하질 않았으니 말이다.


푸콘 역시 매서운 바람을 동반한 비가 흩날리고 있다. 우리가 꼭 비구름을 몰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푸에르토몬트와 날씨가 비슷했다. 가까운 오스페다헤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섰다. 우비를 착용하고 거리로 나가니 독특한 광경을 발견했다. 남미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간혹 우비를 착용한 사람도 보이긴 했지만, 이슬비가 와도 장대비가 쏟아져도 대부분 그냥 맞고 다녔다. 심지어는 멋진 정장을 차려입고 굵은 비를 그냥 맞으며 돌아다니는 사람도 봤을 정도다.


작은 마을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레포츠의 도시답게 여행사가 잔뜩 늘어서 있고 유럽풍의 가옥이 드문드문 보였다. 중심가로 들어서니 대형 카지노와 쇼핑센터가 보였다. 오로지 관광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도시임을 실감했다. 마을의 서쪽 끝엔 라 포자(La Poza)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가 있었다.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린 호수의 모습은 음침하기 짝이 없다. 호수변에는 주인 없는 요트들이 쓸쓸히 정박해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라포자 호수


“물귀신 나오기 딱 좋은 환경이네.”


옆에 있던 산악인이 혼잣말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 더 이상의 관광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비가 오는 데다 바람까지 부니 매우 춥기도 했고. 골목마다 보이는 떠돌이 개들도 추운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계획 없이 찾은 푸콘, 시작부터 어째 좋지 않다.


다음날도 날씨는 좋지 않았다. 비바람을 뚫고 마을 북쪽에 있는 플라야 그란데(Playa Grande) 호수까지 갔지만 강한 바람에 우산과 모자도 날아가고 눈도 똑바로 못 뜰 지경이다.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이렇게 공치는 것인가! 어째 레포츠는커녕 아무것도 즐기지 못한 채 떠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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