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돈이 된다"

<올바른 고기> 1장

by 돈태

어릴 적부터 그는 특별히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TV에 동물 프로그램이 나오면 리모컨을 찾았고, 길에서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물을 싫어하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동물에 대해 무관심한 편에 가까웠다. 남의 집에 갔을 때 강아지가 달려오면 손길을 한번 내주는 정도.


그런 그에게 잊지 못할 기억 하나가 있다. 돼지와 관련된. 그 장면은 오래도록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열한 살 무렵, 도시 외곽 시골에 사는 외삼촌 댁에 갔을 때였다. 좁은 우리 안에서 돼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울부짖고 있었다. 귀를 찌를듯한 울음소리를 따라 우리쪽으로 다가가자 강렬한 암모니아 냄새에 역했다. 진흙처럼 보였던 바닥을 자세히 보니 돼지들의 분뇨가 뒤섞여 불쾌하게 질퍽질퍽였다. 좁은 우리 안에서 살을 맞대고 버둥대는 돼지들의 피부는 마치 피부병에 걸린 것처럼 곳곳이 벌갰다.


외삼촌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얼핏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돼지들이 그 새로운 사업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그는 직감했다. 궁금한 마음으로 마주한 외삼촌의 새로운 사업은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눈앞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는 불쌍함보다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때 옆에 있던 외삼촌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농담처럼 가볍게 말했다.


"걱정 마라. 며칠 뒤면 한 마리는 출하한다. 나머지는 좀 더 살려둬야지. 그래야 돈이 된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마루에 앉아 돼지들이 내던 소리를 떠올렸다. 그 소리들이 귓속을 맴돌수록 외삼촌이 툭 던진 말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출하'라는 단어는 생소해 불안했고, '살려둬야지'라는 말은 역설적이게 죽음을 연상시켰다. '돈이 된다'는 말을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럴수록 외삼촌이 낯설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또 다른 감정을 알아챘다. 삼촌의 말에 뭐라 대꾸하지 못했던 그 순간의 모호한 감정을 그는 조금 더 나이가 든 후 무력감으로 스스로 규정했다.


그날 이후 그는 외삼촌 댁에 갈 때면 돼지우리를 외면했다. 그 편이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예전과 같이 외삼촌을 대하기 어려웠고, 그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때마다 외삼촌은 '사춘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그에게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그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도,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중간이었다. 하지만 그 중간은 단순한 성적의 중간이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대하는 어떤 태도와도 비슷했다.


고등학교 체육대회 때 반 친구들이 출전 종목을 나눌 때 그는 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400m 계주 보조—달리지 않는 ‘대기 멤버’—자리를 선택했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뛰면 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잘 뛰어서 주목받는 것도, 못 뛰어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언제나 ‘튀지 않는 자리’였다.


한 번은 국어 수행평가로 시를 써오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는 담임에게 칭찬을 들을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이 들자 일부러 평범한 문장으로 고쳐 제출했다. 칭찬을 받으면 다음에도 기대가 따를 것 같았고, 기대는 실망의 가능성을 함께 데려오는 법이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삶을 대하는 그런 태도에서 안락함을 느꼈다.


외삼촌 댁에 간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 해질 때쯤 수능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그 사이 돼지에 대한 기억과 감정도 옅어질 대로 옅어져 있었다. 그는 주변의 예상을 웃돌아 서울 중하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수능 당일 감기 기운 덕분이라고 그는 혼자 생각했다. 몸이 힘든 만큼 모르는 문제는 더 과감히 찍고 지나갔던 것이 의외의 성과를 냈다는 것이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그의 분석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 점점 줄어들며, 인서울 대학생 놀이에도 감흥이 떨어질 무렵 돼지의 기억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서로 과는 다르지만 교내 방송국으로 묶인 동기들과 교양과목으로 영화 관련 강의를 수강신청했다. 강사는 방송 프로그램에 종종 불려나가는 나름 유명한 영화평론가였다.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고 방학을 앞둔 마지막 수업에서 강사는 시험과 무관하게 오늘은 편하게 영화를 즐기는 날이라며 공장식 축산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틀었다. 그는 강사의 말대로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없었다. 강사의 의도도 그런 거였다는 것을 그는 곧 알아챘다. 스크린을 채운 비좁은 공간. 그 속에서 바둥대는 동물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 불현듯 외삼촌 댁의 돼지들이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와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 한 장면에서 눈이 휘둥그레지며 온몸이 떨렸다.


한 암컷 돼지가 스톨이라는 철골 구조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출산을 하는 장면이었다. 강사는 출산의 생산성을 높이려고 이런 짓까지 한다고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그는 순간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으며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외삼촌이 했던 '그래야 돈이 된다'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명확해졌다. 모든 것을 앞도하는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사육장에서 외삼촌이 했던 말과 그런 곳을 질타하는 강사의 말은 앞뒤 문맥과 감정은 달라도 같은 말이었다. 이어진 내용들은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철골이 흔들릴 정도로 몸을 뒤척이며 울부짖는 어미 돼지의 장면은 정지화면처럼 그의 머릿속에 박혔다.


강의실을 나오며 그는 '학대'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심장은 100미터 달리기를 막 끝낸 것처럼 팔딱거렸다. 왜 정치인들과 뉴스는 이런 문제를 말하지 않지!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는 건가? 순간 그는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곧 어색함을 느꼈다. 튀지 않고 평탄하게 지내온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이런 감정은 너무나 격정적이어서 더욱 생소했다. 어릴 적 외삼촌 댁에서는 느꼈던 감정도 이런 거였나?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어쩌면 회피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언젠가 정의 내렸던 그때의 '무력감'이 실은 '질투심'에 가까웠음을 그는 인정하기 싫었다. 외삼촌 댁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자신이 아니라 뭔가를 해야만 하고 할수 있었던 외삼촌에게 더욱 감정이입이 됐다는 불편한 진실...


마지막 교양수업이 끝나고 술 한잔 하자는 동기들을 뿌리치고 집에 온 그는 급하게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곤 눈이 벌게지도록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의 프로필과 이력을 샅샅이 뒤져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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