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보고 싶어 해"

<올바른 고기> 4장

by 돈태

새벽 네 시. 아직 해가 뜨기 전의 공기는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핸드폰 거치대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솔향의 차에서 내렸다. 종돈장은 생각보다 더 어둡고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 더욱 선명히 들렸다. 철창을 긁는 소리, 어딘가에서 바닥을 차는 둔탁한 소음, 그리고 짧게 터져 나오는 울음들...


노을이 작은 이어피스를 건넸다. “실시간 스트리밍 연결됐어요. 촬영 시작하면 돼요. 앞장서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치대에 고정된 핸드폰을 켜고 동영상 모드로 전환했다. 손에 살짝 땀이 배는 걸 느꼈다. 그는 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생각보다 큰 자기의 숨소리에 스스로도 움찔했다.


오름이 낮게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울타리 오른쪽이 CCTV 사각지대일테니 조심해서 붙어가요. 아니면 바로 들켜.”


가장 맨 뒤에 있던 솔향은 주위를 둘러보며 우리에게 상기시키듯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오늘 목표는 단 하나. 보여주기"라고 말했다.


그는 핸드폰 화면과 실제 현장으로 시선을 바쁘게 왔다갔다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울타리 건너편으로 가면 돼지들의 처참한 현실을 화면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인지 울타리를 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울타리 맨 위쪽의 녹슨 철근이 옷에 걸렸고, 순간 균형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손에 쥔 거치대에 신경을 집중했다. 울타리에서 뛰어내리는데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진흙 바닥에 착지를 할 때 한쪽 다리가 살짝 떴고, 그는 거치대를 하늘로 향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괜찮아요?" 뒤에서 노을이 조금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지금 장면도 찍었어요”라고 말했다. 몸의 한쪽 면이 진흙투성이가 됐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종돈장 건물 외벽은 오래된 페인트가 벗겨져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냄새가 더 짙어졌다. 암모니아, 썩은 짚, 피비린내가 뒤섞인 냄새. 그는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이미 경험을 해본 터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노을이 작은 손전등으로 건물 아래 틈을 비추었다. “저기 봐요.”


그는 핸드폰을 노을이 가리키는 쪽으로 돌렸다. 틈 사이로 돼지의 납작한 코가 보였다. 바깥공기를 마시려는 듯, 반복해서 허공을 헤집었다. 옆에서 오름이 문고리를 조금 들어 올렸다. 낡아서인지 쉽게 들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낯익은 소리들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낮고 길게 이어지는 갑갑한 숨소리, 비명과도 같이 갈라지는 울음소리. 절망과 고통의 순간들이 뒤범벅된 듯한 소리들에 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천천히 들어가.” 솔향의 목소리가 이어피스를 타고 흘렀다. 그는 핸드폰을 정면으로 향했다. 화면에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먼지가 부유했다. 핸드폰 불빛이 통로를 스치자, 철창마다 몸을 뒤척이는 돼지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는 최대한 많은 장면을 핸드폰 화면에 담기 위해 거치대를 바쁘게 움직였다.


어떤 돼지는 옆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고 있었고, 어떤 돼지는 이미 벌어진 상처를 바닥에 문지르고 있었다. 몸 이곳저곳에 피멍이 잡혀 있었고, 눈 아래 고름이 말라붙은 돼지도 보였다.


오름의 손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저쪽. 분만 스톨.”


그는 핸드폰을 정면으로 하고 스톨 쪽으로 다가갔다. 한 어미돼지가 옆으로 쓰러진 상태에서 철골 사이에 꽉 끼어 있었다. 죽은 듯 누워있는 어미돼지의 젖꼭지는 상처투성이였다. 그 주변에 새끼돼지들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살아있어요…” 노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손을 뻗어 카메라 초점을 맞추었다. 화면 속 어미돼지는 실눈을 뜨고 들릴 듯 말듯한 숨소리를 힘겹게 내고 있었다. 스툴 안에 있는 어미돼지는 자기 배 쪽으로 다가가려고 애쓰는 새끼들에게 고개를 돌릴 힘도, 공간도 없었다. 그는 양쪽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카메라 초점이 흔들리지 않게 손에 힘을 줬다. 그때 어두운 통로 끝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쿵. 쿵. 무겁고 일정한 리듬. 종돈장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랜턴을 흔들며 통로를 훑었다. 다들 숨을 죽이고 그는 핸드폰을 땅 쪽으로 향하게 해 핸드폰 빛이 새지 않게 했다. 잠시 후 랜턴 불빛이 멀어지자 솔향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나가자." 그는 핸드폰을 들어 사라지는 랜턴 불빛에 초점을 맞추며 "앤딩"이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들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종종걸음으로 돼지우리들을 지나쳤다. 울타리를 넘는 동안에도 핸드폰은 여전히 동영상 모드로 켜져 있었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 그의 헐떡이는 호흡과 돼지들의 울음소리 등이 뒤엉켰다.


종돈장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타자마자 솔향이 시동을 켜며 소리쳤다. “출발!”


차가 곧장 어둠 속을 빠져나갔다. 그는 핸드폰을 끈 채 한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오름이 혼잣말 비슷하게 말했다. “방금 찍은 거… 진짜 반응 클 거야. 종돈장 직원까지 등장하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솔향은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기대된다"고 짧게 말했다. 노을은 이제 막 동이 트고 있는 창밖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손에 있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핸드폰을 쥔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을 그는 애써 외면했다.


차가 어느 정도 도심에 가까워질 때 노을이 소리쳤다. “와… 지금 동시 접속자 수 봤어요?” 넋 놓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노을이 어느새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빠르게 켰다. 실시간 스트리밍 화면의 댓글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역시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오름이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처음엔 백 명도 안 됐는데, 갑자기 훅 올라갔어요. 지금은 천 명 넘었어.”


솔향이 운전대를 잡은 채 짧게 웃으며 “역시 현장이야. 사람들이 이런 걸 보고 싶어 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곱씹었다.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이 어딘가 불편하게 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불편함을 밀어내는 또 다른 감정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자신들이 했던 행동이 지금 이 순간 천 명이 넘는 누군가의 화면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는 흥분되는 마음을 추스르며 숫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노트북을 펼쳤다. 밤을 새웠지만 잠은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스트리밍 영상은 자동으로 저장돼 있었고, 그는 곧바로 편집을 시작했다. 흔들림이 심한 구간은 최소한으로 정리하고, 돼지들의 참혹한 모습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어미돼지를 찍은 장면을 길게 편집했다. 그리고 울타리를 넘다가 넘어지는 순간, 중간중간의 거친 호흡, 진흙바닥에 맞닿는 발자국 소리 등을 그대로 살렸다. 종돈장 직원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이기 우해 효과음과 자막을 적극 활용했다.


노을이 그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 장면…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


노을 옆에서 노트북 화면을 곁눈질하고 있던 오름은 “그래도 보여줘야 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공용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솔향이 그를 향해 말했다. “제목은 어떻게 할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구출 시도 중단’. 아니면… ‘여기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 같은 건 어때요.”


오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좋네. 사람들 더 보겠어.”


솔향은 "둘 다 활용하자. 직관적인 첫 제목을 제목으로 쓰고 두 번째는 부제로 사용하면 좋을 거 같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편집 영상 마지막에는 '지금도 이런 곳에서 태어나고, 살고, 사라지는 생명이 있습니다.'라는 자막을 붙였다.


SNS에 편집 영상을 업로드한 때는 해가 중천에 떠있을 무렵이었다.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화면을 바라봤다. 조회 수는 분 단위로 올라갔다. 댓글은 빠르게 쌓였다.


‘이게 현실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불법 아니냐?’ ‘보여줘서 고맙다.’


감정은 제각각이었지만, 영상은 분명히 퍼지고 있었다. 공유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의 가슴도 함께 조여왔다.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노을이 한탄인지 놀람인지 분간이 안되게 "와..." 하며 "장난 아니네요"라고 짧게 말했다.


그는 대답 대신 화면을 재빨리 새로고침 했다. 숫자가 다시 뛰어올랐다. 천 단위를 넘어 만 단위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메시지 알림이 하나 떴다. 프로필 사진은 무지개가 대신하고 있었고, 계정 이름은 영어라서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영상 잘 봤습니다. 편집도 인상적이네요. 요즘 이런 시도 드뭅니다."


그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가를 하는 듯한 말투에서 동물권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편집도 인상적'이라는 문장에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그는 답장을 보내려다, 이 메시지가 개인 계정이 아니라 단체 계정으로 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는 키보드 위에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려놨다. 시선을 다시 영상 화면으로 돌리자 숫자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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