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고기> 5장
편집영상이 SNS에 업로드된 뒤 며칠 동안, 그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보호소로 가는 차 안에서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숫자는 일정한 속도로 늘어났다. 다만 댓글 성격이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충격과 분노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들어 비난이 섞이기 시작했다.
‘불법 침입 아닌가?’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범죄를 정당화한다.’ ‘결국 조회 수 장사 아닌가.’
어쩌면 적법한 문제제기, 아니면 불순한 의도를 가진 비난? 댓글을 보고 있으면 그의 머리는 복잡했고, 마음은 불편했다. 반박하고 싶은 문장은 많았고, 설명하고 싶은 맥락이 눈에 띄었다. 억울하기도 했고, 정곡을 찔린 듯 무안하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들이 뒤죽박죽 엉키고 설키며 혼란스러웠다. 그는 댓글에 일절 반응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비난이 늘어날수록 후원 계좌는 채워졌다. 소액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었다. 솔향은 엑셀 파일을 보여주며 말했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확실히 늘었어. 영상 이후에.”
그는 미소를 짓지 못했다. 기쁜 소식이었지만, 마음 한편은 찝찝했다. 누군가의 분노와 혐오 그리고 불편함 위에서 단체의 숨통이 트이고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영상에 대한 댓글이 잠잠해지며 후원금이 들어오는 속도 역시 더뎌졌다. 그 무렵 단체의 향후 활동과 관련한 회의 일정이 잡혔다. 임시보호소에 가는 일정을 하루 미루고 회의가 열렸다. 솔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방식, 조금 더 해보는 게 어떨까? 지금 우리 사정상…” 솔향이 말을 이으려는데 노을이 끼어들었다.
“최근 댓글 봤어요? 우리의 원래 의도랑은 조금 다른 분위기인 것 같아요. 또다시 관심을 끌려면 더 자극적인 장면이 필요할 텐데…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다른 대안이 있을까?” 오름이 낮게 말했다. “후원금 문제도 이번에 해결되고 있는데…”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모였다. 그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저도… 고민돼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근데 이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종돈장 현실을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테고. 불편하더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노을은 힘없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 영상에선 더 자극적으로 가야 해요? 거기 있는 아이들은 구하지 않으면서...”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여러 장면이 스쳤다. 학대받는 돼지들, 후원금 숫자, 댓글 그리고 무지개 프로필이 보내온 SNS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는 한 손으로 빰을 비비며 “그래서 고민이 돼요. 또 하는 게 맞는지”라고 말했다.
회의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솔향은 예전처럼 단호하지 못했다. 동의를 구하는 듯한 솔향의 말투는 생소했다. 그는 짐작했다. 솔향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영상만 찍자는 아이디어를 그가 처음 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자신의 입장이 권위를 갖게 됐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솔향의 그런 태도와 말투가 싫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회의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났다. 솔향은 임시보호소에 있는 아기돼지 두 마리의 돌봄에 조금 더 집중하고, 다음 주쯤 다시 회의를 하자고 했다. 모두 동의했다. 나아진 재정 상태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는 걸 다들 부인하기 어려웠다. 회의가 끝나고 오름과 노을은 다른 약속이 있는 듯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와 솔향만 사무실에 남았다. 그는 회의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흩어진 종이컵을 치우고, 충전 중인 배터리를 정리했다. 그때 솔향이 다가왔다.
“영상 관련해서 메시지 하나 왔던데…”
“저도 봤어요.” 그가 말했다. “편집 방식이 인상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동물권 단체에서 활동하는 분 같았어요.”
솔향은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메시지 보낸 쪽은 단체 계정이 아닌 것 같고… 혹시 따로 연락해 볼 생각은 있어?”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속마음과는 살짝 결이 다른 반응을 내 보인 그는 스스로 어색함을 느꼈다. 단체 계정으로 받은 메시지였지만, 그에게 개인적으로 보내는 메시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체 계정으로 온 메시지인 만큼 마음대로 답을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간단하게 답 보낼까요?” 그가 말했다.
다시 자신의 업무 공간으로 돌아거던 솔향이 발걸음을 멈추고 “당장은 뭐라 답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다시 메시지가 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보자"라고 말했다.
자신을 향한 솔향의 시선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봤다. 그 메시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솔향이 알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집에 돌아온 그는 노트북을 열어 단체 계정에 접속했다. 무지개 프로필이 보낸 메시지를 다시 천천히 읽었다. 답을 보내지 않으려 했지만, 손이 자꾸 키보드 위에서 꼼지락 댔다. 그는 안되겠다싶어 메시지 대화 창을 닫았다. 하지만 화면에는 무지개 프로필 계정이 여전히 떠있었다. 그는 사진 밑 아이디를 클릭해 무지개 프로필 계정으로 들어갔다. 개인 계정이라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적인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유독 동물들과 찍은 사진이 많았다. 그렇게 사진들을 훑어보는데 그의 시선이 한 사진에 고정됐다. 한 남성이 강당에서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를 발표하는 모습이었고 그 뒤에 현수막에는 '동물권 강화를 위한 입법과제 세미나'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는 사진을 확대했다. 그제야 현수막 아래쪽에 적혀있는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주최 : 동물과 함께, 000 의원실'
순간 그의 입이 벌려졌다. '동물과 함께'는 그에게 이미 익숙한 이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동물권 단체 두 곳 중 하나였다. 특히 동물과 함께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후원을 받고 있고, 현재 여당과 적극적으로 협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확대한 사진에 눈을 더 가까이 댔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남성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봤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의 표정은 당당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고 천장을 한 번 바라본 그는 메시지 대화창을 다시 열었다. 그리곤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결국 화면에 남은 메시는 3문장으로 좁혀졌다.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건조하게 보내자! 그는 전송 버튼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영상을 찍은 사람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반갑습니다. 현장을 직접 다루는 분이실 것 같아 더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 이런 방식, 쉽지 않죠.”
그는 화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쉽지 않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는 인정, 남들은 이런 고생을 모르지만 자기는 잘 알고 있다는 공감. 그는 마음의 벽이 허물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바로 답을 보냈다.
“아직 많이 서툽니다. 단체도 규모가 작고요.”
이번에는 답장이 조금 늦었다. 그는 보호소 사진을 몇 장 더 살폈고, 다음 주 동물병원 예약 날짜를 메모장에 적었다. 그러는 사이에 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현장과 멀어지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정작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확장시킬 수 있는 건 현장입니다. 저는 현재 ‘동물과 함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괜찮다면 한 번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그는 곧바로 답장을 쓰지 않았다. 의자에 등을 대고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단체 계정으로 이런 대화를 이어가는 게 맞는지? 그렇다고 만나자는 제안을 굳이 무시할 필요가 있을까?
“단체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는 메시지를 보낸 뒤 노트북을 덮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심장은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