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고기> 3장
그날 구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밤새 뒤척였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묘하게 들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축사 안의 케케 한 냄새와 아기돼지의 따뜻한 체온이 번갈아 떠올랐다. 그 온기는 아직도 팔 안쪽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새벽이 다가올 무렵에서야 결심했다. 휴학하고 제대로 해보자!
그는 다음 날 학교 행정실에 휴학원을 제출했다. 대학원 조교가 “사유는요?”라고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개인 사정…이에요.”
조교는 아무 말 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쳤다. 휴학 절차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비인간 해방단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4층 건물의 다락방 같은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군것질 봉지와 인쇄물, 낡은 컴퓨터 본체들이 뒤엉켜 있었다. 벽에는 캠코더 배터리가 아무렇게나 꽂힌 멀티탭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우리 공간… 좀 그렇죠?”
구출 현장을 함께했던 노을이 머리를 긁적이며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괜찮아요.”
그는 진심이었다. 오히려 이런 공간이 마음 편했다. 거대 조직의 정돈된 구조보다, 이런 엉성함 속에서 자기 역할이 더욱 도드라질 거 같았다.
“지금 구조해 온 돼지들 돌보는 데만도 모든 게 부족해요. 병원 데려가야 하는 애들도 많고, 약값은 늘 모자라고… 무엇보다 돼지들 밥값이...”
노을 뒤쪽에 있던 오름이 바닥에 쌓인 사료 자루를 발로 치우며 말했다. 그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며칠 전 구출해 온 아기 돼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구출해 온 돼지들은 어디 있죠?"
"지금 우리가 구출한 돼지는 모두 두 마리에요. 서울 외곽 쪽에 임시 보호소에 있어요. 오늘 오후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시죠."
유일하게 파티션이 있는 공간에서 처음 보는 남자가 고개를 빼고 말했다. 기지개를 한번 크게 켜며 다가온 남자는 '솔향'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수염은 덥수룩했지만 얼굴은 앳돼 보였다. 오름은 비인간 해방단의 살림과 기획을 맡고 있다며 솔향을 간략히 소개했다. 오름의 짧은 소개에서 그는 '실세'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순간 피식하고 헛웃음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와 삼각김밥 등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네 사람은 솔향이 운전하는 낡은 스타렉스에 올라탔다. 차 안에는 동물들의 약봉지, 한쪽 다리가 너덜너덜한 카메라 삼각대, 누군가 먹다 남긴 에너지바 포장이 뒤섞여 굴러다니고 있었다. 차가 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솔향이 말했다.
“임시보호소…라고 부르긴 하는데, 사실 그냥 마당 있는 시골집 하나 빌려 쓰는 거예요. 집주인이 마음 넓은 분이라 임대료도 거의 안 받고요. 대신 우리가 정리 좀 해드리는 조건으로.”
“정리요?”
그가 물었다. 오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직접 보시면 알아요. 진흙, 쓰레기, 잡초… 뭐 하나 멀쩡한 데가 없어요.”
차가 허름한 시골집 앞에서 멈췄다. 지붕 기와는 군데군데 깨져 있었고, 마당은 곳곳에 잡초가 자라 있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진흙탕이 될 듯한 흙길이 집 앞까지 이어져 있었고, 마당 한편에는 오래된 농기구와 플라스틱 통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집 외벽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고, 창문틀에는 곰팡이가 가득했다. 집이라기보다는, 버려져 있던 농가에 가까웠다.
"여기가… 보호소라고요?"
"보호소로 만들어가는 중."
보호소를 본 그의 첫 반응에 솔향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들은 먼저 마당 정리부터 시작했다. 쌓여 있던 마른풀을 긁어모으고, 잡초를 손을 뽑거나, 낫으로 베어냈다. 오래된 플라스틱 통은 내용물을 알 수 없어 조심스레 치웠고, 흙길에 난 웅덩이들은 돌과 흙을 옮겨와 메워야 했다. 오름은 헛간 쪽으로 가더니 오래된 나무판자를 하나하나 꺼내 들었다.
"이걸로 우리 만들 재료를 골라야 해요. 쓸 수 있는 게 있고, 못 쓰는 게 있고… 거의 다 못 써요 사실."
솔향이 현관문 옆에 달린 오래된 전등을 떼어내며 오름의 말을 받았다.
"노을이랑 같이 골라줘. 전기 배선도 다 낡아서 위험해. 물도 약하게 나오고."
그는 노을과 함께 오름이 있는 헛간 쪽으로 갔다. 오래된 목재 냄새와 곰팡내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노을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기돼지 보여 드릴까요?"
헛간 안쪽, 임시로 만든 작은 우리 안에 며칠 전 그가 구조한 아기돼지가 담요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빛은 거의 들지 않았지만, 작은 숨소리가 방 안을 밝게 채웠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기 돼지의 등을 쓸었다. 따뜻했고, 살갗으로 전해지는 떨림이 그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울컥했다.
"여기… 너무 열악하네요."
"맞아요. 보호소가 시골집이다 보니 손봐야 할 곳도 많고 하루 종일 돌봄을 할 수 없으니 며칠 방치되는 경우도 있어요."
노을의 말에 그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대신 아기돼지의 잔잔한 호흡을 바라보았다. 이 작은 생명을 살리는 일은 구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이후의 돌봄이라는 진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민을 넘어 책임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아기돼지가 몸을 뒤척이며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기돼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가까이 댔다. 아기돼지는 다가오는 그의 손에 코를 갖다 대며 작게 킁킁거렸다.
"날씨가 곧 추워지는데... 우선 헛간에 들어오는 바람을 막을 가벽을 세우고 바닥을 따뜻하게 다시 깔아야겠어."
다른 아기돼지를 살펴보던 오름이 말했다. 옆에 있던 노을이 "중고 매트를 알아봐야겠네"라고 말하자, 솔향은 "잠시만. 지금 예산을 확인해 보고"라고 답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들은 아기돼지들이 저녁으로 먹을 바나나와 감자 등을 우리 안에 있는 먹이통에 가득 채웠다. 아무리 찾아도 사람이 잘 만한 공간은 눈에 띄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보호소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구출해 온 아기돼지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차 키를 챙기던 솔향이 그에게 물었다.
"내일도 같이 오시겠어요?"
"네. 앞으로 계속 함께 할게요."
그는 그 약속대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임시보호소로 향했다. 하루가 다르게 보호소는 모양을 갖춰 나갔다. 지저분했던 마당에 아기돼지들이 놀 수 있는 진흙 놀이터도 만들었다. 그는 헛간 벽 틈을 막기 위해 새 판자를 고정했고, 노을은 중고 사이트에서 어렵게 구한 고무 매트를 깔았다. 오름은 못쓰는 농기구에서 나무 부분을 분리해 우리에 맞게 잘라내고, 솔향은 전기 배선을 최소한 안전하게 정리하며 임시 조명을 달았다.
며칠 사이, 보호소는 완전히는 아니어도 ‘살아 있는 공간’처럼 변했다. 그는 이 정도면 여기서 잠도 잘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마리 아기돼지는 서로 몸을 붙이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왔다. 그는 오전에 사무실로 출근해, 저녁에 보호소에서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하루라도 보호소 가지 않으면 아기돼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는 조만간 아기돼지들과 같이 잠을 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비인간 해방단에서는 아무도 월급을 받지 않았고, 후원금은 들쑥날쑥했다. 구출한 아기돼지를 돌보는 것이 당분간은 최대 현안이었다. 다음 활동을 기획하는 회의를 간간히 했지만 특별히 결정된 일은 없었다. 그는 다른 돼지들도 구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뭔가 여력이 안 되는 듯한 분위기에 눌려 속마음을 꺼내 놓지 못했다. 그는 아직 단체의 재정상태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예산이 바닥이야. 돼지들 과일을 줄이고 싸구려 사료를 늘리고 있을 정도로. 지금 상황이면 돼지를 더 구조하는 건 무리야."
좁은 사무실 바닥에 둘러앉아 활동 계획을 의논하던 중 솔향이 단호하게 말했다. 바닥에 앉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던 그는 손에 있던 젓가락을 잠시 내려놨다.
"하지만 학대받는 아이들은 너무나 많은데. 하루라도 빨리 구출해야죠."
노을이 다소 감정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래야 하지만 우리 사정이... 구출 말고 다른 활동으로 역량을 집중하는 건 어떨까? 음... 도살장 앞엣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등 비질(Vigil)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굳은 표정으로 오름이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더 구조를 해오면 감당 못할 돌봄이 될 수 있어. 그럼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건 또 다른 학대가 될 수 있고. 지금 있는 아이들을 잘 보살피면서 오름의 말처럼 대안적인 활동을 기획해야 할 거 같아."
솔향이 사실상 방향을 제시했다. 노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짧은 논쟁이 솔향의 마지막 발언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숨을 한번 쉬고 말을 이었다.
“실제 돼지를 더 구조하지 않아도... 종돈장 문제를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건 어떨까?.”
솔향이 눈썹을 올렸다.
“어떻게?”
그는 숨을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뗐다.
“공개 구출을 한다고 여기저기 미리 공지를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실제 구출 현장을 유튜브로 생중계를 하는 거죠. 꼭 돼지를 구출할 필요까지는 없고 열악하고 폭력적인 종돈장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걸로요."
“구출은 아니고, 구출 ‘시도’인 거네요.”
노을이 말을 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가 바로 말을 받았다.
“네. 실태를 드러내는 게 목적이에요. 우리가 지금 당장 더 많은 돼지를 돌볼 여력이 없다면 문제를 알리는 일이라도 해야죠."
턱을 괴고 있던 오름이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데려오지만 않는다면 법적으로도 좀 나을 수 있고.”
오름의 말까지 들은 솔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표정이었다.
“나쁘지 않네. 지금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홍보 효과도 분명히 있을 테고... 그럼 후원금도 기대할 수 있을지도.”
그는 뭔가 개운치는 않으면서도 뿌듯함을 느꼈고, 자신의 판단이 다른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줬다는 경험은 생소하면서도 짜릿했다. 옆에 있던 노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는 거 같았지만, 그는 모른 척했다. 솔향이 그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준비해 보자. 촬영 맡아 줄 수 있지?"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