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 해방단

<올바른 고기> 2장

by 돈태

그날 이후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매일 이어지는 소비 행위, 식탁 위의 사소한 선택, 마트 진열대의 깔끔한 포장지들까지 모두 거대한 침묵의 고리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울고 있는데, 그 소리가 너무 멀리 있어서 들리지 않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그를 침울하게 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본 장면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되감아 보았다. 어미 돼지가 몸을 비틀며 철골 틈 사이로 내뱉던 낮고 억눌린 울음. 그 소리는 더 이상 스크린 속 소리가 아니었다. 식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를 맡을 때도, 동네 정육점 앞을 지나갈 때도 희미하게 귓가에서 울렸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먹어왔던 것들은 무엇이었나? 내가 먹고, 사고, 소비한 모든 것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었나?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해 낯선 감정을 느꼈다.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는 동물권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피터 싱어, 톰 리건, 게리 프란시온 등의 책을 읽으며 그는 ‘동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종차별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그는 아직 입에 달라붙지 않았지만 ‘비인간’이라는 단어를 쓰려고 노력했다. 단어 하나가 바뀐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란 건 알았다. 하지만 그는 언어가 사고를 만든다고 믿게 됐다. 동물권 책에서 봤던 생소한 언어들은 그를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각성한 사고는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친구들과 고깃집에 가면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물만 마시고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은 그를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 구조 위에서 굴러가는지 보고야 말았다. 그와 같은 경험을 아직 하지 못한 친구들의 불편한 시선은 그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시선을 보내는 친구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 더욱 이론적 무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직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동물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스스로도 어색하다고 생각했기에 담금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공부를 할수록 그는 묘한 우월감도 느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 한편에는 ‘세상이 지금 묵살하는 문제를 내가 먼저 말할 것이다’라는 감정도 섞여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었다. 어떤 무리에서도 중심에 서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는 생소한 감정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학대받아온 동물들의 삶이 자신의 주변부 삶과 비슷해 보였다.


그는 점점 학과 공부와 거리가 멀어졌다. 시험 기간에도 그는 동물권 책을 읽고, 관련 자료들을 찾았다. 도서관에서 전공과목 서적과 씨름하고, 취업을 위해 자격증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기말고사 기간 사람들로 꽉 찬 교내 도서관에서 어렵게 자리를 구해 동물권 책을 읽던 그는 순간 답답함을 느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과 자신이 다른 시공간에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뭔가 거대한 구조가 짓누르고 있는 곳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그때였다. 그는 읽던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휴학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몸은 대학 도서관에 있고, 머리는 다른 곳을 향하는 분열적인 상황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책이 아니라 현실을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욕망 비슷한 것이 꿈틀대기도 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동물권 단체들을 찾아봤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메이저 단체들은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거 같았고, 활동가 수도 많았다. 그는 선뜻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규모가 부담스러웠다고 하면 솔직한 감정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이미 잘 짜인 판에서 또다시 주변부에 놓일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때 우연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비인간 해방단’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작은 단체였다. 구성원은 대부분 젊었고, 그간 했다는 활동들을 보니 어딘지 모르게 투박했다. 그래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비인간 해방단'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영상들은 편집도 엉성하고, 초점을 잃은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후원계좌를 안내하는 페이지는 썰렁하고 성의 없어 보였다. 그는 '내가 할 일이 있겠다'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혹시 중심에 설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는 단체에 메일을 남겼다. 다음 날, 단체 활동가가 전화를 걸어왔다. 젊은 남성의 밝은 목소리였다.


“혹시 이번 주 주말에 시간 괜찮으세요? 작은 현장 탐방이 하나 있어서요. 위험하진 않습니다. 직접 보시면 더 확신이 생기실 거예요.”


바로 현장에 가보자는 제안에 망설여졌다. 방어기제가 발동하고 있다는 느낌도 감추기 어려웠다.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다고 얼버무리며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안돼 그는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핸드폰을 들어 조금 전에 통화한 남성에게 문자를 남겼다.


'몇 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주말,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비인간 해방단의 활동가 두 명이 그를 맞았다. 각각 노을, 오름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둘 다 스무 살 초중반쯤 돼 보이는 또래였고, 준비해 온 장비는 어딘가 불안했다. 작은 캠코더, 오래 써서 긁힌 헤드랜턴, 장갑 한 켤레가 전부였다. 단체의 규모가 작다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알았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그 ‘작음’이 실감 났다.


셋이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의 오래된 축사였다. 낡은 철문은 조금만 힘을 줘도 금속 가루가 떨어질 듯 삐걱거렸다. 문틈 사이로 젖은 짚 냄새와 묵은 암모니아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냄새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뒤로 뺐다.


“뒤에서 따라오셔도 돼요. 기록만 하셔도 충분해요.”


노을이라는 이름을 쓰는 활동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축사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돼지 한 마리가 짧고 낮은 비명을 질렀다. 그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어린 시절 외삼촌 댁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울음이 귓속에서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그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장 사이에 난 좁은 통로로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바닥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신발 밑창이 끈적하게 들러붙는 느낌이 났다. 통로 끝, 녹슨 철창 틈 사이로 웅크린 아기돼지 한 마리가 보였다. 몸 한쪽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고, 상처가 벌어진 자리에서 묽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활동가가 작은 커터칼로 철장에 묶인 밧줄을 끊자 아기돼지는 힘이 빠진 듯 기울었다. 그 순간 아기 돼지는 그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그저 바라볼 뿐인데 묘하게 ‘말을 건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참고 견디며 누군가를 기다려왔다는 눈빛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 아이를 데려갈 겁니다.”


오름 활동가가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 노을이 아기 돼지를 안아 들었다. 놀란 아기 돼지는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몸부림과 소리는 위협적이지도 긴장시키지도 않을 만큼 미약했다. 노을은 "아니야, 아니야 우리는 나쁜 사람들 아니야. 안 아프게 해 주려고 왔어"라며 갓난아기를 대하듯 아기 돼지를 달래고 있었지만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오름이 노을 쪽으로 손을 뻗어 아기 돼지를 받으려고 했다. 몸부림치던 아기돼지는 오름의 손을 보자 마치 본능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듯 오름의 손을 물었다. "악." 깜짝 놀란 오름은 순간 짧은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안심한 듯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아기 돼지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입에 물린 손을 서서히 뺐다. 아기 돼지 입에 들어갔다 나온 오름의 손은 멀쩡했다. 오름은 "견치 자르기"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그는 오름과 노을 곁에서 영상을 찍고 있었다. 축사에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자처한 일이었다. 오름 품으로 옮겨온 아기 돼지는 다시 평온을 찾은 듯 보였다. 얌전해진 아기돼지를 바라보던 오름은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아기돼지를 안아보라고 권했다. 그는 캠코더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기돼지를 받아 들었다. 예상보다 따뜻하고 묵직한 체온이 그의 팔을 통해 전해졌다. 순간 그는 전율했다. 주변부에서 중심부 그것도 넘어 전지전능함이라고 하며 거창할까? 그는 자신의 손으로 다른 생명체의 삶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옮길 수 있다는 느낌에 벅찼다.


차량에 돼지를 실은 뒤 축사를 빠져나오는 순간, 그의 심장은 마치, 다른 생명체인 것처럼 뛰면서 제어가 안 됐다. 그는 자신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두려움 때문인지, 환희 때문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의 품에 안긴 아기 돼지는 졸린 듯 얕은 숨소리를 내며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축사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심장 박동이 잦아들었다. 깊은 한 숨을 한 번 내쉰 그는 오름에게 "아까 작게 말했던, 견치 자르기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오름은 좀 전에 아기돼지에게 물렸던 손을 한 번 들여다본 후 천천히 입을 뗐다.


"아기 돼지도 송곳니가 날카로운데 이 부분을 니퍼 등으로 절단하거나 그라인더로 가는 거예요. 저런 농장에서 대부분 하는 짓이에요. 좁은 우리 안에 갇힌 돼지들이 서로 물어뜯을 수 있어 미리 자르는 거예요. 농장에서는 그냥 ‘관리’라고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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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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