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포장

번외편/ 퇴사를 앞두고

by 돈태

복직 날짜가 다음 주로 다가왔다. 4개월 전, 휴직에 들어갈 때는 퇴사하겠다는 마음이 확고했는데 복직 날짜가 다가오니 마음이 약해진다. 언론사라는 처량한 갑옷에 대한 미련과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에 대한 안락함 그리고 언론계에서 중도탈락한 듯한 이상한 패배감 등이 복잡하게 마음을 흔든다. 퇴로를 끊어야겠다는 심정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다음 주 중으로 사원증, 노트북 등을 반납하고 퇴직원을 제출하기로 했다. 다음 주 화요일 회사를 다녀온 일을 다음 연재로 쓸 생각이다. 이번 연재는 번외편 형식으로 쏟아지는 기사들에 대한 평소 생각들 가운데 한 가지를 썼다.




기자를 관두는 과정이지만 10년이 넘는 습관은 여전하다. 매일 아침 주요 조간을 훑어본다. 며칠 전, 한 일간지 1면 기사의 제목을 한참 노려봤다. 1면 기사는 그날 해당 언론사가 가장 가치 있다고 판단한 기사다. 가치판단 기준은 이슈성, 화제성, 시의성, 기획성, 단독성 등으로 다양하다. 각 언론사 데스크들은 편집회의를 통해 신문의 간판으로 내걸 1면 기사를 나름 치열하게 고른다. 눈을 못 떼게 만든 그 1면 기사의 제목은 '퍼펙트스톰 휩싸인 韓…'3대 방어축' 시급하다'다. 제목을 보고 바로 머리를 스친 생각은 더 읽을 필요가 없다,였다. 하지만 혹시나 하며 읽었고, 역시나였다.


경험상 제목을 보면 대충 안다. 기사가 힘이 있는지 없는 지를. 이른바 힘이 있는 기사는 탄탄한 취재가 기본으로 깔린다. 기본이 단단하면 깊이 있는 시각이나 새로운 팩트가 담긴다. 시각의 경우 전문가의 진단과 분석 그리고 대안으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독자들이 특정 사안을 조금더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사 한 꼭지에 충돌되는 시각들이 담기면 더욱 좋다. 다양한 시각들을 읽기 편하게 정리하는 글솜씨가 뒷받침될 경우 기사의 완성도를 높인다. 읽는 이는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을 가다듬으며 입체적인 사고를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존 통념에 반하는 신선한 시각을 제시할 수도 있다. 업계 용어로 섹시한 기사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발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자의 내공이 관건이다. 평소에 공부가 돼 있어야 설득력이 높은 '다른 시각'을 취재할 수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호기심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무엇보다 힘 있는 기사라고 하면 새로운 팩트가 있어야 한다. 말 그대로 뉴스다. 팩트라고 다 같은 팩트가 아니다. 팩트마다 가치가 다르다. 내부 고발, 제보 등을 토대로 순발력 있게 의혹을 제기하는 팩트는 도발적이라서 이목을 끌지만 빈틈이 많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사로, 언론플레이를 힌다는 말을 떠올리면 된다. 단순 의혹 제기는 반박될 가능성이 높다. 기자들은 이용당했다는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단독과 특종 모두 새로운 팩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두 기사 사이에는 좁혀지기 어려운 수준 차이가 존재한다. 단독은 하루에도 밀물처럼 쏟아진다. 단발성으로 끝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유력자의 말 한마디를 갖고 단독을 붙이기도 한다. 유력자라고 하면 출입처의 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치부의 경우 대통령, 당대표 등이 될 수 있다. 경제부라면 CEO다. 우연히 마주치거나 예정에 없던 통화로 단독을 붙여 기사를 써버리는 경우도 있다. 단독을 줍는 경우다.


특종은 무게감이 다르다. 팩트를 넘어 진실을 파고든 기사다. 끈질김이 관건이다. 크로스체크를 통해 팩트를 검증하고 가다듬어 내보내는 기사다. 데스크의 꼼꼼한 게이트키핑은 필수다. 꼬리를 무는 후속 기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종 기사를 쓴 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후속 취재에 경쟁적으로 뛰어들 수 있다. 이런 기사의 경우 상당한 파급력을 갖는다. 끈질김이라는 관점에서 특종기사는 기획기사라기보다 탐사보도에 가깝다.


기사가 힘이 있으면 제목은 직관적이고 담백하다. 제목을 놓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릴 필요가 없다. 취재된 팩트 자체가 제목이 된다. '퍼펙트 스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은 그래서 기사 내용은 별거 없다는 말로 읽힌다. 제목으로 내세울 팩트가 없으니 제목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다. 스끼다시에 더욱 공을 들인 횟집이 떠오른다.


언론사는 사명감이 투철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에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는 진심이 베어난다. 이런 진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제목을 고르고 골랐을 테다. 그래서였을까. 깊이 있는 분석이나 논쟁적인 시각, 새로운 팩트가 기사에서 안 보인다. 빈수레가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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