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기자가 된 거 같다."
수습 딱지를 떼고 첫 부서를 배치받은 후 이어지던 출입처와의 술자리에서 A부장은 내게 말했다. 이제 좀 기자다워 보인다고. 술자리에 함께 있던 출입처 홍보실 직원들은 옆에서 잔을 머리 위로 올리며 환호했다. 나는 홍보실장을 부둥켜안고 러브샷을 들이켰다. 테이블 중앙에 앉아 박수를 치던 부장은 흡족한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러브샷을 마치고 부장 옆자리에 앉자,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A부장의 손바닥에서 온기마저 느꼈다.
술을 상당히 좋아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편하지 않은 사람들과 마시면 말이 별로 없다. 여려 명이 모여서 마시는 술자리에서는 더욱 말이 없다. 출입처와의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기자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한 번은 A부장이 출입처 술자리를 마치고 택시를 잡으면서 내게 한소리를 했다. 유난히도 그날, 내가 말이 없었던 거 같다.
"니가 부장인줄 아냐?"
"네?"
"너는 가만히 있고 내가 분위기를 띄워야겠냐."
"아... 네..."
"대접받으면 너도 좀 나서서 분위기를 잡아야지. 내가 말을 계속하고 넌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
"알겠습니다. 부장. 죄송합니다."
술자리가 끝나면 A부장한테 비슷한 핀잔을 종종 들었다. 그래서 작심하고 출입처 술자리에 간 날, 눈을 질끈 감고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주저리주지리 하며, 과한 리엑션과 어색한 흥분상태로 술자리를 버텼다. 그날 A부장으로부터 듣기 싫은 핀잔은 피할 수 있었지만, 집에 가는 내내 자괴감 비슷한 감정이 끌어 올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기자와 출입처는 겉으로는 갑을관계지만, 실상은 상부상조다.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등 언론사 각 부서마나 출입처가 있다. 기자들은 출퇴근을 자신의 출입처 기자실로 한다. 기자들은 출입처 홍보실에서 배포하는 일정과 보도자료를 처리하고 출입처 홍보실을 통해 취재를 하는 경우가 일상이다. 당연히 출입처가 아닌 곳의 뉴스는 보도되기 힘들다. 언론사 출입처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기본적으로 기자실을 둘 공간이 필요하고, 좋게 말해 기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인적-물적 자원, 즉 돈이 없으면 출입처가 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출입처는 언론사의 최대 수입원인 광고주다.
이런 비용들은 직간접적으로 기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A부장이 자주 했던 말 가운데 하나는 "저녁 자리 좀 잡아라"였다. 출입처 홍보실 등과 술자리를 잡아달라는 부탁이자 지시다. 자기 돈 안 내고 비싼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부서 수익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는 출입처 관리도 필요하다. 언론사 부장들은 출입처 홍보실과 호형호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자주 봤다는 얘기다. 대접은 받지만, 광고비라는 약점이 있다. 어느정도 긴장 관계 속 상부상조다.
기자들 입장에서도 홍보실과 관계를 돈독히 맺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일간지 기자들이 취재하는 곳은 출입처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대형 기획기사가 아닌 이상 출입처를 벗어난 취재는 드물다. 매일 신문을 제작해야 하는 일간지 기자들은 출입처 기사를 제대로 마감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다. 당연히 출입처 홍보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언론사별, 부장들마다 기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를 것이다. A부장은 기사보다는 네트워크를 더 높게 쳤던 걸로 짐작간다. 네트워크라고 포장했지만 기사를 위한 취재보다는 사적이든 공적이든 다른 이해관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관계들이다. A부장이 라떼 이야기를 할 때 습관처럼 따라붙는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 한다.
"내가 현장에 있을 때는 혼자서 밥이랑 술을 먹어본 적이 없어. 출입처랑 주말에도 같이 놀러다닐 정도로 가까웠다."
현장 기자 시절, 취재원과의 약속으로 일정이 가득 찼다는 자랑이다. 좋게 말해서 취재원이지, 홍보실과 잡은 약속이 대부분이다. 물론 부저런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홍보실과 업무시간 외에도 만남을 이어갔다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다. A부장이 "술자리 좀 잡아라"라고 말할 때면 덧붙이는 말이 있다.
"내가 꼭 말해야 약속을 잡냐."
기자를 그만두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제는 출입처를 벗어나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