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태 Feb 16. 2018

은밀한 상대적 우월감을 끝까지 지켜냈다

1802 논픽션 캐릭터

등장 인물 : 나, 뿔테, 차분함, 해병대, 뮤지컬


오늘 주인공은 뿔테다. 오늘 하루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자신의 찌질함과 쪼들림을 익살스럽게 포장해 수다를 떨었던 뿔테는 결국 벤츠를 타고 떠났다. 순식간이었다. 


회의 시간에 맞춰 부원들이 하나둘 회사로 모여들었다. 회사 근처 유일한 흡연 장소에서 뿔테를 만났다. 기억나지 않는 대화를 주고 받던 중 익숙한 차 한대가 흡연 장소 뒤쪽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운전자는 차분함이다.


뿔테가 회사 근처 주차 얘기로 대화를 이끈다. 나 역시 주차 문제로 여러번 곤욕을 치룬 터라 관심이 가는 주제다. 뿔테는 손으로 흡연 장소 앞쪽을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하지만 난 뿔테의 손이 가리키는 대상을 찾지 못했다. 대충 고개만 끄덕이며. 


"저기, 저기, 난 저기다 차를 세웠어. ㅋㅋ"


부회의는 싱거웠다. 회식을 위한 전야제를 치룬 느낌이다. 해병대는 서둘러 회의를 끝내고 회식 장소를 공지했다. 


어색한 회식 자리는 그나마 뿔테가 있어 대화가 이어진다. 뿔테의 살신성인 덕이라고 치하해본다. 본인 얘기로 대화를 리드하는 신통한 재주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회식 초반 뮤지컬이 공식적으로 결혼 소식을 알렸고, 뿔테는 이를 받아 자신의 결혼 생활로 대화를 이어갔다. 


"무조건 와이프 말을 따라라. 너의 의견을 중요치 않다. 결혼 준비할 때도 그렇지만 신혼 여행기간에 주의해야 한다. 싸우면 큰일이다. 그치?"

"뭐, 그게 편할 수 있죠."


뿔테는 경험으로 얻은 지론을 펼치며 틈틈히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내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그래도 뿔테는 지치지 않았다. 


"결혼하면 돈 관리에 대해 서로 잘 이야기 해야한다. 난 다 맡겼다. 이제는 내 월급이 얼마인지도 잘 모른다. 와프가 주는데로 받아 쓴다. 한달에 십만원일때도 있고 이십만원이 될때도 있다. 뭐 돈 쓸일이 있나. 이게 편하다. 그치?"

"저는 뭐 생활비를 매달 얼마 떼주고 나머지는 서로 터치 안 해요."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 뮤지컬 넌 통장을 두개 만들어라. 명절 떡값 같은 것이 따로 들어올수 있는 통장말이다. 정작 난 없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떡값도 와이프 통장으로 다 들어간다. 한번은 수표로 받은 돈이 있었는데 만원짜리로 바꿔 와이앞에 뿌렸다. 하하하. 이런게 행복이다."


와이프에게 잡혀 사는 정도가 셀수록 주변의 반응이 좋다. 뿔테는 더욱 힘을 낸다. 여전히 뿔테는 내 반응을 살핀다. 동의해달라는 눈빛이다. 의무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정말 저렇게 살수 있나, 라는 생각이이지만 할수 있는 일은 미소를 짓는 것 뿐이었다. 


뿔테는 재밌고 밝은 사람이다. 참 힘들게 산다, 는 동정심을 유발시키면서도 자신은 제일 즐겁다. 그런데 뿔테의 한탄 속에서 여유가 베어난다. 이상했다. 마음만은 부자라는 당당함인가. 


해병대의 말수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어느정도 술잔이 돌고, 1차 자리가 파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해병대는 강요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2차를 도모할 뿐이다. 


1차 장소에서 나왔을 때의 위치 선점이 관건이다. 해병대의 사정 거리 안에서 서성되면 2차 당첨이 유력하다. 1차가 끝나고 식당을 나온 뒤 무리는 자연스럽게 둘로 쪼개졌다. 나와 뿔테는 해병대 무리와 반대 방향이다. 우리 둘은 빠른 걸음으로 상대 무리와의 거리를 벌린다. 


뿔테가 순간 찻길 쪽으로 방향은 튼다.  '택시를 잡으려나' 


뿔테가 손을 흔든다.  쥐색에 큰 차가 옆에 있다. 

"조심히 들어가라."


정확히는 보지 못했다. 벤츠였다. 얼핏보기에도 세단이다. 난 익숙하다는 듯 목례를 하고 방향을 유지했다. 발걸음을 조금더 재촉했던 것 같기도 하다. 뒤돌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작가의 이전글 옛날엔 안 그랬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